요즘 집에 책이 연달이 도착하고 있다. 지난주에 폭풍 쇼핑했던 책들이 하나둘 나를 찾아온다. 새책도 있지만 대게 중고책들이다. 며칠전에는 1961년에 발행된 'LIFE'라는 잡지도 받았다. 1961년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광고들(특히 자동차 광고가 많다... 당시 미국의 중산층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들도)을 보며 잠시 삶이 현기증나게 빨리 지나간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오늘 받은 3권의 책은 <Appropriate Technology: Technology With a Human Face> (1978), <Dag Hammarskjold, Servant of Peace: A Selection of His Speeches and Statments>(1962), <Dag Hammarskjold Stricktly Personal: A Portrait>(1969)이다. 

특히 세번째 책을 열어본 순간 깜짝놀랐다. 책 안에 다그 함마르셀드(제2대 유엔사무총장)의 사진과, 그에 대한 신문스크랩 등이 끼워져 있었다. 책 안쪽 커버에는 주인이었던 사람의 싸인과 'June 1969'이란 독서일자도 씌여져 있었다. 중고책을 구입하면서 덩달아, 이 책에 스며있던 어떤 사람의 흔적까지도 물려받은 것이다.

"사라야, 이 책 봐봐. 대단하지? 책 속에 이런 게 들어있네."
아내에게 책 안에 있는 것들을 보여주었다.

"어? 그 책 대단히 소중했나봐요? 어떻게 그런 책이 중고로 팔리죠?" 
"음.. 아마도 이 책 주인이 돌아기시고, 자녀되는 사람들이 집을 정리하면서 책은 그냥 버리거나 헐값에 팔아버렸을 거야. 책주인에게는 손때묻은, 애장도서이고, 스크랩과 자신의 생각도 적어놓은 책인데.. 자녀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겠지."

1969년.. 지금으로부터 어언 40여년 전의 누군가의 오래된 흔적. 새책에서는 만날 수 없는 중고책만이 가진 선물이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이다. 한 사람이 가진 가치있고 소중한 추억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무척 서운한 일다.

글을 쓰다가 아들이 다가와 "아빠, 똥, 똥"이라 한다. 똥을 싸고 싶으니 화장실에 갔이 가달라는 뜻이다. 변기에 올려주고, 그 아래로 빠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면서 얼굴이 불그락 힘을 잔뜩 주는 아들을 바라보는 건 정말 아버지로서 갖게 되는 특권 중 하나이다.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도, 혹 기억을 다시 못하더라도, 이런 '순간의 추억'을 간직하고, 만끽하고, 감사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비록 책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비록 이 책은 이제 흘러흘러 내게 왔지만, 그 책 주인은 이 책을 만끽하고, 즐겼을 것이다. 

누군가 기억해주지 않더라도, 누군가 그것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선한 일을 행하고, 자신의 가치에 충실하고, 자신의 현재를 누리고 만끽하고 즐거워하는 삶. 하나의 중고책이 내게 멋진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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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셜앙터프러너 단호비전 Trackback 0 : Comment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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