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6일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유엔으로 가는 길을 평소와는 다르게 갔더니, ‘the UN Way'라는 표지가 거리 가로등마다 걸려 있는 거리에 접어들었다. 거리의 끝에 유엔 사무국 건물이 웅장하게 시야에 나타나기 때문에, 기념하여 ’유엔 거리‘라고 명명한 것 같다. 그 끝으로 가서 계단을 내려가니, 한쪽 벽에 익숙한 글귀가 보인다.

성경 이사야서의 한 구절.

                      * 뒤에 유엔건물을 배경으로, Ralph Bunch Park에 있다 

They shall beat their swords into plowshares and their spears into pruning hooks. Nation shall not lift up sword against nation. Neither shall they learn way any more.

유엔의 spirit과 잘 어울리는 성경구절이라 느껴진다.

유엔 건물에 들어서면, 곳곳마다 큰 디스플레이가 걸려있어, 그날그날 어떤 회의가 있고, 어디에서 열리는지에 대한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다. 매일매일 유엔에서 열리는 회의들. 오늘도 안전보장이사회, 아랍연맹 회의 등의 스케줄이 잡혀있다.

 

                                *유엔본부 건물 곳곳에 설치되어있는 디스플레이

 어제부터 점심에는 도시락을 싸와서 사무실에서 먹고 있다. 구내식당에서 먹으면 7달러 정도 드는 것도 부담이어서 당분간 미국에 함께 와있는 어머니께서 도시락을 싸주시기로 했다. 첫날에는 샌드위치를 싸왔는데, 저녁에 되자 배가 고파, 오늘은 볶음밥과 찐 옥수수, 바나나, 두유를 챙겨왔다. 점심이나 저녁식사 시간이 되면, 각자 편히 식사를 한다. 구내식당에서 하기도 하고, 나처럼 자신의 사무실에서 편히 식사를 해도 누구하나 간섭하지 않는다. 너무 조용할 정도로!

오후 회의가 정회되었기에, 내 자리 바로 옆 칸 사무실에 계신 한국인 직원과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유엔에 들어오는 방법으로 JPO, 국가별경쟁시험, 일반면접 등 세 경로가 있다고 하는데, 이 분은 1991년 한국의 유엔가입 이후 처음으로 실시된 국가별경쟁시험에서 합격, 임용되셨다. 외교부 인턴을 하면서, 한국인의 유엔진출 현황 자료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이분의 이름이 외자였기에, 기억에 남았었다. 그 분이 내 자리 바로 옆방 사무실에서 일하고 계신 것이다. 이런 놀라운 인연이!

사무실을 오나가며 내게 자주 안부를 물어주시고, 도움 될 만한 좋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신다. 오늘은 유엔의 구조와 문제 등에 대해 폭넓게 이야기했다. 10여 년을 일하시면서 느끼신 국제기구의 문제점들, 유엔의 한계 등과 더불어 십수 년 내에 개혁되지 않은 채 이대로 가다가는 국제연맹이 해체되고 국제연합(유엔)으로 새롭게 태어났던 것처럼, 유엔도 그 전철을 따를 수 있다고 전망하셨다. 모두가 개혁을 말하지만, 변화를 선뜻 반기지 않는 개별 국가들. 국제문제가 있을 때마다 유엔은 편한 희생양(scapegoat)이 되고 있을 뿐이라고 말씀하셨다.

                                                  *참관했던 Small Arms and Light Weapons 회의

 내 진로와 관심사항에 대해 말씀드리자, 유엔 같은 국제기구는 처음부터 들어오는 것보다는 먼저 어떤 회사나 기관에서든지 경험을 하고서 들어오는 것이 좋다고 한다. 국제기구, 특히 유엔이라는 곳은 “주인이 없는 기관”이기에, 특유의 비효율적 특징과 환경들에 처음부터 맛을 들게 되면,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떤 것이 효율적인지 비효율적인지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지도록 다른 곳에서의 경험이 무척 중요하고 귀중한 자산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국제기구에 꿈이 있다면, 단순히 학위를 얻기 보다는, 실무경험을 2~3년이라도 갖고 학위를 가지는 것이 ‘실무’와 '전문'을 두루 함께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계속되다가,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들었다. 외국과 비교해 한국의 지도자들에게 부족한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이야기하다가, 장기적인 비전과 일관성이 없다는 것에 공감이 만들어졌다. 중국이 ‘100개년 서부개발 계획’ 등과 같은 장기적이며, 일관성 있는 정책들을 만드는 반면, 한국의 정책은 정권에 따라, 이해집단에 따라 short-lived한 프로젝트들을 만들기 쉬운 구조이다. 싱가포르의 mentor minister 리콴유도 중요한 지도자의 자질로 Visionary와 Consistent를 뽑았다. 유엔사무총장의 리더십에 초점을 두었던 석사논문에서도 확연히 들어났던 것은 개별 사무총장의 리더십에 따라, 분명 UN의 전체적인 힘이 달랐다는 것이다. 결국은 사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러한 자질들을 배워가고, 습득해가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해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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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5일

 

아침뉴스를 켜보니, 북한미사일 뉴스와 함께, 일본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안건을 재제결의안을 올릴 것이라고 한다. 아침부터 쏟아지는 비가 복잡한 현실을 대변해주는 듯 하다. 아니나 다를까, 유엔 건물 주위로 CNN, ABC 둥 방송차량들이 진을 치고 있다. 사무실에 10시에 도착. 30분이나 지각하다니! 그래도 사무실에는 독일출신 인턴 외에는 아무도 없다. 다들 어디로 가셨나?

 

유엔의 공식 언어로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아랍어, 중국어, 서어 등 6개가 있지만, 확실히 지배적인 언어는 영어이다. 6개의 공식 언어 중 어느 것이라도 쓸 수 있기에, 남미나 아프리카 등의 나라들은 프랑스어, 서어 등의 자국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다. 그런 나라들의 회의참여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 언어의 제약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150개국의 나라가 모여서, 하나의 결의문을 만들어내기가 어찌나 어려운지. 언어가 틀린 것도 문제지만, 어감의 차이까지 감안하면, 제대로 된 결의문을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이다. 결국 많은 결의문들이 유명무실하게, 모호하고, 일반적인, 논란이 없을 만한 표현들로 가득 차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성경에는 바벨탑 사건으로 인간의 언어가 나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로가 자유롭게 소통이 가능했고, 급기야 신을 대적하려는 것에도 마음이 일치하게 되자, 그 벌로 주어진 것이 다양한 언어로의 갈라짐이라는 것이다. 국제회의를 보면, 언어의 문제가 얼마나 회의진행에 많은 장애를 가져다주는지 확인하기 어렵지 않지만, 만약 언어가 모두 같았다면, 국제회의는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해진다. 오후 3시부터 계속되던 회의 중 간간히 밖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잠시 사무실에 들릴 일이 있었는데, 카페테리아에 있는 작은 TV를 에워싸고 각국의 외교관들이 프랑스와 벨기에의 월드컵 4강전을 관람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모습이었는데 사진을 찍지 못해 참 아쉽다. 오후 4시56분, 족히 30여 명이 넘는 대표단들이 웅성웅성하면서 회의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회의장 좌석에 빈 공간이 많이 눈에 띄었다. 회의를 주재하던 의장도 그 광경에 허탈했는지 가벼운 웃음을 짓는다. 축구게임이 끝났던 것이다. UN대표들에게 회의에 참가, 결의문을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축구도 빼놓을 수 없었나보다.

 

오늘은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퇴근을 할 수 있었다. 이번 주가 일년 중 가장 바쁜 주 중이라고 한다. 금요일까지 결의문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의 속도로는 해결책이 안보이자, 의장이 비공식 모임을 저녁8시에 하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정식 회의스케줄이 아니기에 의무적으로 올 필요는 없지만, 8시에 80%이상의 대표단이 참석한 것을 보면, 대표단들도 마음이 급한 것 같다. 늦게까지 남아서 내가 한 일은 29층 사무실과 지하의 회의실을 왕래하며, 급하게 만들어진 문서들을 대표들에게 배부하는 것이었다. 60페이지가 넘는 문서를 250부 정도 만들어야 하다보니, 복사기에서 갓 나온 복사용지는 뜨거워서 만질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복사되면 회의장에 가서 나누어주었는데, 회의장 문에 들어서자마자, 빙 둘러서 서로 가져가려고 쟁탈전이 벌어졌다. 사무실에 올라와 같이 일하던 직원에게 “They are selling like hot cakes"라고 농담을 했더니 웃어버린다. 올해가 일한지 25년째라면서, 자신은 유엔에서 일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에게, 나도 ”international civil servant"가 되고 싶다고 하니, 꼭 배워야 할 것을 지금 배우고 있다며 격려해준다. 각국 대표들은 문서준비, 회의준비, 문서복사 등의 일들이 다 쉬운 줄 아는데, 이러한 behind-the-scenes 작업이 없다면, 어떤 국제회의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시작부터 이러한 일들을 배워야지, 제대로 된 ‘국제회의’, ‘국제기구’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밤 10시50분에야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고, 양복은 땀으로 젖었지만, 소중한 것을 배우고 있음을 깨달으며 감사한 피곤함을 그대로 느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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