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계'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6.21 거버넌스란 무엇일까? (2)
지난 17~18일 국제회의를 마치고 이제 한 숨을 돌린다. '거버넌스'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유엔거버넌스센터에 와서 '거버넌스'를 접한 지도 이제 4년차. 처음엔 막연하기도, 모호한 개념들이 최근엔 아주 실제적으로, 그리고 흥미롭게 해석되고 있다.

국제회의의 주연설자였던 가이 피터스(글로벌거버넌스 분야의 최고석학 중 한 명)는 "거버넌스란 steering(조향 또는 조정)이다"라고 간결하게 정의한다. 한 가지 방향과 목표를 향해 다양한 행위자들을 조율하고 인도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를 쉽게 이해하자면, 월드컵 축구를 떠올려보면 좋다.

얼마전 남아공 월드컴 한국-아르헨티나 전 후반부를 시청할 때였다. 한국이 1:2로 지고 있는 상태에서, 최전방 수비수가 골을 몰고 미드필드를 넘어 아르헨티나로 깊숙이 들어왔다. 순간 차범근 해설위원의 해설이 나왔다.

"지금 급하다고 해서 저렇게 수비수가 자리를 이탈해서 치고 올라오는 것은 위험합니다. 자신의 자리가 비게 되면, 역공을 당할 때 전체 시스템이 무너지게 되거든요. 저러면 안됩니다. 급하다고 자신의 역할을 넘어서거나 무시하면 안되죠."

순간, 아하.. "거버넌스란 그와 같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버넌스란 UN의 정의를 살펴보면 the process of decision-making(의사결정 과정) 또는 the process by which decisions are impplemented(결정사항이 실행되는 과정)을 말하며,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 그 달성되어가는 과정의 참여성, 투명성, 효율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예전 같으면 '어떻게든 서울로 가면 그만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결과만 좋으면 어떤 경로를 통했어도 상관을 안했지만, 지금은 결과 이전에 그 과정 자체의 합법성/합치성/합리성도 중요해졌다.

거버넌스란 마치 축구를 하는 11명의 팀과 같다. 예전에는 정부(government)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을 책임졌지만, 문제의 다극화, 복잡화를 거치면서 정부의 역량만으로는 공공문제 해결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기업, 시민사회, 국제기구 등의 또다른 책임주체의 의사결정 및 의사결정 집행 참여가 요구되는 것이다. 정부는 조향(steering)의 역할을 할 뿐, 모든 과정을 예전의 단독자처럼 역할할 수 없다. 각각의 주체가 자신의 맡겨진 책임과 위치를 지킬 때, 공동의 목표가 더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거버넌스에 대한 믿음이다.



이러한 거버넌스는 사실 우리 삶에 적용될 수 있다. 축구선수 11명 누구나 대표선수인 것처럼, 거버넌스 원칙이 적용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누구나 스스로 주인의식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주인의식은 개개인의 숨겨진 잠재력이 100% 이상 발휘되도록 하는 마법과 같다. 단, 이러한 거버넌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조향자(steering role)를 맡은 초기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스스로를 많이 드러낼 수록, 더 많은 참견과 통제를 하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할 경우, 각 구성원의 섬세한 주인의식은 자라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그 부분이 제일 어렵다. 행사 다음날, 몇 년간 알아왔던 한 분과 점심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거버넌스를 위해서는 절제가 필요한다. 그게 쉽지가 않다. 누구나 자신을 드러내려하고, 가만히 있기보다는 '내가 바로 여기 있다' '내가 제일 중요하다' '스포트라이트는 내 것이다'라고 말하려는 강렬한 욕구를 참는 게 절대 쉽지 않다."고 했다. 

내가 유엔거버넌스센터에 있으면서 얻게 되는 많은 유익 중의 하나가 바로 '거버넌스' 정신의 실습이다. 다양한 행사와 회의를 진행하면서, 우리 센터가 지향하는 '거버넌스'를 실제로 실현해보려 개인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각자가 책임성 있는 주체로서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11명의 축구선수 처럼, 자신의 역할을 누군가의 명령과 통제때문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동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며칠 전부터 읽고 있는 <복잡계>와 관련된 책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일견 복잡한 현상 속에서도 나름의 질서가 있는데, 그 질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율'과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사분란한 통제와 수직적인 위계로는 만들어내지 못하는 창의성의 발현이, 한편으로는 뭔가 어수선하고, 느슨하며, 강렬한 '리더'의 부재로 보이는 현상 속에서 더 활발하게 이루어진 다는 것을 '복잡계' 이론을 통해 다시금 깨닫는다. 

올 여름은 거버넌스와 복잡계에 대한 심도있는 개인연구를 할 생각이다. 기존에 진행했던 스토리(story), 그리고 이전에 진행했던 '창의성의 발현'이란 주제와 맞물려, 뭔가 복잡하면서도 재미난 결과가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카리스마형(Charisma)이 아니라 거버넌스(Governance)형 인재가 운신할 환경이 급증하고 있다. 협력과 공존, 스토리의 기반은 경쟁 또는 복속이 아니라 네트워크와 주인의식에 있기 때문이다. 해서 누구는 leadership이 아니라 ownership을 개발하라고 말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소셜앙터프러너 단호비전 Trackback 0 : Comment 2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addr | edit/del | reply 깨어있으라! 2011.01.29 14:14 신고

    좋은 말씀 감사 합니다. 저도 영어 스피치 모임의 운영을 보며 올바른 조직과 리더의 방향에 대하여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만 할 줄 아는 반면, 김정태님 께서 이렇게 글로 표현하여 주시니, 정말 훌륭하십니다. 오늘도 님을 보며 이렇게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2. addr | edit/del | reply 생으로가득한 2013.01.15 15:03 신고

    거버넌스로 검색하다 우연찮게 들어와서 좋은 글 읽고 갑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