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출근해보니 신규 직원(회계 담당)을 뽑는 날이었다. 오전 9시부터 서류전형을 통과한 분들이 오셔서 면접을 보고 있다. 그러고보니 2007년 2월경 나도 유엔거버넌스센터에 와서 입사 인터뷰를 봤던 기억이 난다. 1차 서류전형을 거쳐, 2차 논술에는 약 30명이 참석한 것으로 기억난다. 먼저 A4 1페이지 분량의 영문기사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문제가 있었고, 학술적인 성격의 한국어 논문을 영어로 번역, 그리고 마지막에는 어떤 상황을 주고나서 그에 대한 '비지니스 레터' 형식의 영문 이메일을 작성하라는 것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영문 이메일에도 미세한 구조와 형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이후 모든 업무 가운데 받는 영문이메일의 구조를 분석해서 어떻게 하면 최대한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 나름대로 고민하기도 했다. 다행히 2차를 통과했고 3차 면접에는 6명이 진출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여자분 4명과 나를 포함한 2명의 남자. 대기장소에서 보면서 나의 경쟁상대는 남자 분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 분의 배경을 들어보니 카추사 출신에다가 워싱턴 소재 대학원의 석사 출신이었다. 또한 모 공공기관에서 대외업무를 담당하는 등 빵빵한 경력이 돋보였다. 나는 이제 막 국제대학원을 졸업했을 뿐이지만, '나에겐 이것이 있다!'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 분은 유엔관련 경험이 전무했던 것이다. 다행이도 나는 유엔본부 인턴과 컨설턴트, 그리고 유엔관련된 석사논문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3차 영어면접에서 물어본 질문은 대충 '거버넌스란 무엇인가?' '국제경험에 대해 설명해보라' '야근을 하게 되거나 복사일을 해야 하거나 등등 상관없는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답변 속에서 충분히 나 자신의 경험등을 어필할 수 있었고 아무래도 그것이 최종 선발에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어제 강의를 들었던 '안철수 교수의 좋은MBA'에서 안철수 교수님은 스티브 잡스의 명연설 중 '연결된 점들'이란 부분을 소개해주셨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을 경험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다 뒤를 돌아보면 각각의 경험들이 현재까지 연결되어지더라는 것이다.
물론 안철수 교수님은 이어지지 않았으면 또 어떠한가?라며 반문하셨다. 연결될 수도 있고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각 과정마다 느끼는 현재의 행복감이야말로 절대 놓쳐서는 안된다는 말씀이었다.

나의 경험을 돌아보면, 뭔가를 계획하고 일관되게 진행한 건 아니었다. 뭔가 전략을 세우거나 컨설팅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글쓰기가 좋아서 봉사했던 홍보출판부의 6개월동안의 기자/편집/기획/교정교열 등 잡지를 만들었던 시간이며, 온라인 뉴스매체에 정기적으로 기사를 송고했던 것들, 유엔본부 인턴을 하면서도 반기문 사무총장 선거 캠페인에 대해 기사 시리즈를 썼던 것들.. 많은 부분들이 연결되면서 혹은 연결되지 않았더라도 내겐 너무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바로 많은 경험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라는 안 교수님의 말을
다시한번 긍정하며, 오늘도 나는 내게 많은 경험과 생각, 사유와 실패의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다.
유엔거버넌스센터에서의 하루도, 사회적 출판기획가로서의 삶도, 그리고 한 가정의 남편으로서, 사랑하는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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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1일(수)
한 달전부터 한국에 도착해 함께 유엔거버넌스센터에 근무하는 아프리카 출신 K씨의 정착을 돕고 있다. 워낙 남 돕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담당하는 홍보/대외협력/역량개발/기획 외에도 각종 총무(?) 역할도 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담당하게 됐다. 

사실 2006년 여름 UN본부에서 인턴을 시작했을 때 느꼈던 황당함과 막막함을 간직하고 있기에, 누군가 새롭게 온 사람을 보면 꼭 도와줘야겠다고 결심한 바도 있었다. 첫날 자리 배치를 받고 앉아있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누군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겠지 하고 사무실을 둘러봤는데,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우울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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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필리핀 출신의 Robert씨가 첫 근무를 위해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의 직위는 Operations Management Expert(L-3)이고, 앞으로 우리 사무실의 각종 사업관리에 주력하게 된다.

사무실 안내를 하고 컴퓨터 등 쓸 자리를 정리해주면서 서로에게 공통끈이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다. 2005년 여름, 아직 국제대학원생이었을 때 고대 국대원과 NYU Wagner School이 공동 여름학교를 운영했는데 그때 2달간 미국제행정연구소(American International Public Administration Institute)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 Rober는 Wagner Shcool의 석사로 Public Administration을 전공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학교에서 마주쳤을 지도 모르고, 서로의 지도교수도 똑같이 Professor Smith였다!!  정말 세계는 좁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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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6일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유엔으로 가는 길을 평소와는 다르게 갔더니, ‘the UN Way'라는 표지가 거리 가로등마다 걸려 있는 거리에 접어들었다. 거리의 끝에 유엔 사무국 건물이 웅장하게 시야에 나타나기 때문에, 기념하여 ’유엔 거리‘라고 명명한 것 같다. 그 끝으로 가서 계단을 내려가니, 한쪽 벽에 익숙한 글귀가 보인다.

성경 이사야서의 한 구절.

                      * 뒤에 유엔건물을 배경으로, Ralph Bunch Park에 있다 

They shall beat their swords into plowshares and their spears into pruning hooks. Nation shall not lift up sword against nation. Neither shall they learn way any more.

유엔의 spirit과 잘 어울리는 성경구절이라 느껴진다.

유엔 건물에 들어서면, 곳곳마다 큰 디스플레이가 걸려있어, 그날그날 어떤 회의가 있고, 어디에서 열리는지에 대한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다. 매일매일 유엔에서 열리는 회의들. 오늘도 안전보장이사회, 아랍연맹 회의 등의 스케줄이 잡혀있다.

 

                                *유엔본부 건물 곳곳에 설치되어있는 디스플레이

 어제부터 점심에는 도시락을 싸와서 사무실에서 먹고 있다. 구내식당에서 먹으면 7달러 정도 드는 것도 부담이어서 당분간 미국에 함께 와있는 어머니께서 도시락을 싸주시기로 했다. 첫날에는 샌드위치를 싸왔는데, 저녁에 되자 배가 고파, 오늘은 볶음밥과 찐 옥수수, 바나나, 두유를 챙겨왔다. 점심이나 저녁식사 시간이 되면, 각자 편히 식사를 한다. 구내식당에서 하기도 하고, 나처럼 자신의 사무실에서 편히 식사를 해도 누구하나 간섭하지 않는다. 너무 조용할 정도로!

오후 회의가 정회되었기에, 내 자리 바로 옆 칸 사무실에 계신 한국인 직원과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유엔에 들어오는 방법으로 JPO, 국가별경쟁시험, 일반면접 등 세 경로가 있다고 하는데, 이 분은 1991년 한국의 유엔가입 이후 처음으로 실시된 국가별경쟁시험에서 합격, 임용되셨다. 외교부 인턴을 하면서, 한국인의 유엔진출 현황 자료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이분의 이름이 외자였기에, 기억에 남았었다. 그 분이 내 자리 바로 옆방 사무실에서 일하고 계신 것이다. 이런 놀라운 인연이!

사무실을 오나가며 내게 자주 안부를 물어주시고, 도움 될 만한 좋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신다. 오늘은 유엔의 구조와 문제 등에 대해 폭넓게 이야기했다. 10여 년을 일하시면서 느끼신 국제기구의 문제점들, 유엔의 한계 등과 더불어 십수 년 내에 개혁되지 않은 채 이대로 가다가는 국제연맹이 해체되고 국제연합(유엔)으로 새롭게 태어났던 것처럼, 유엔도 그 전철을 따를 수 있다고 전망하셨다. 모두가 개혁을 말하지만, 변화를 선뜻 반기지 않는 개별 국가들. 국제문제가 있을 때마다 유엔은 편한 희생양(scapegoat)이 되고 있을 뿐이라고 말씀하셨다.

                                                  *참관했던 Small Arms and Light Weapons 회의

 내 진로와 관심사항에 대해 말씀드리자, 유엔 같은 국제기구는 처음부터 들어오는 것보다는 먼저 어떤 회사나 기관에서든지 경험을 하고서 들어오는 것이 좋다고 한다. 국제기구, 특히 유엔이라는 곳은 “주인이 없는 기관”이기에, 특유의 비효율적 특징과 환경들에 처음부터 맛을 들게 되면,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떤 것이 효율적인지 비효율적인지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지도록 다른 곳에서의 경험이 무척 중요하고 귀중한 자산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국제기구에 꿈이 있다면, 단순히 학위를 얻기 보다는, 실무경험을 2~3년이라도 갖고 학위를 가지는 것이 ‘실무’와 '전문'을 두루 함께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계속되다가,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들었다. 외국과 비교해 한국의 지도자들에게 부족한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이야기하다가, 장기적인 비전과 일관성이 없다는 것에 공감이 만들어졌다. 중국이 ‘100개년 서부개발 계획’ 등과 같은 장기적이며, 일관성 있는 정책들을 만드는 반면, 한국의 정책은 정권에 따라, 이해집단에 따라 short-lived한 프로젝트들을 만들기 쉬운 구조이다. 싱가포르의 mentor minister 리콴유도 중요한 지도자의 자질로 Visionary와 Consistent를 뽑았다. 유엔사무총장의 리더십에 초점을 두었던 석사논문에서도 확연히 들어났던 것은 개별 사무총장의 리더십에 따라, 분명 UN의 전체적인 힘이 달랐다는 것이다. 결국은 사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러한 자질들을 배워가고, 습득해가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해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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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5일

 

아침뉴스를 켜보니, 북한미사일 뉴스와 함께, 일본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안건을 재제결의안을 올릴 것이라고 한다. 아침부터 쏟아지는 비가 복잡한 현실을 대변해주는 듯 하다. 아니나 다를까, 유엔 건물 주위로 CNN, ABC 둥 방송차량들이 진을 치고 있다. 사무실에 10시에 도착. 30분이나 지각하다니! 그래도 사무실에는 독일출신 인턴 외에는 아무도 없다. 다들 어디로 가셨나?

 

유엔의 공식 언어로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아랍어, 중국어, 서어 등 6개가 있지만, 확실히 지배적인 언어는 영어이다. 6개의 공식 언어 중 어느 것이라도 쓸 수 있기에, 남미나 아프리카 등의 나라들은 프랑스어, 서어 등의 자국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다. 그런 나라들의 회의참여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 언어의 제약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150개국의 나라가 모여서, 하나의 결의문을 만들어내기가 어찌나 어려운지. 언어가 틀린 것도 문제지만, 어감의 차이까지 감안하면, 제대로 된 결의문을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이다. 결국 많은 결의문들이 유명무실하게, 모호하고, 일반적인, 논란이 없을 만한 표현들로 가득 차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성경에는 바벨탑 사건으로 인간의 언어가 나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로가 자유롭게 소통이 가능했고, 급기야 신을 대적하려는 것에도 마음이 일치하게 되자, 그 벌로 주어진 것이 다양한 언어로의 갈라짐이라는 것이다. 국제회의를 보면, 언어의 문제가 얼마나 회의진행에 많은 장애를 가져다주는지 확인하기 어렵지 않지만, 만약 언어가 모두 같았다면, 국제회의는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해진다. 오후 3시부터 계속되던 회의 중 간간히 밖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잠시 사무실에 들릴 일이 있었는데, 카페테리아에 있는 작은 TV를 에워싸고 각국의 외교관들이 프랑스와 벨기에의 월드컵 4강전을 관람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모습이었는데 사진을 찍지 못해 참 아쉽다. 오후 4시56분, 족히 30여 명이 넘는 대표단들이 웅성웅성하면서 회의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회의장 좌석에 빈 공간이 많이 눈에 띄었다. 회의를 주재하던 의장도 그 광경에 허탈했는지 가벼운 웃음을 짓는다. 축구게임이 끝났던 것이다. UN대표들에게 회의에 참가, 결의문을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축구도 빼놓을 수 없었나보다.

 

오늘은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퇴근을 할 수 있었다. 이번 주가 일년 중 가장 바쁜 주 중이라고 한다. 금요일까지 결의문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의 속도로는 해결책이 안보이자, 의장이 비공식 모임을 저녁8시에 하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정식 회의스케줄이 아니기에 의무적으로 올 필요는 없지만, 8시에 80%이상의 대표단이 참석한 것을 보면, 대표단들도 마음이 급한 것 같다. 늦게까지 남아서 내가 한 일은 29층 사무실과 지하의 회의실을 왕래하며, 급하게 만들어진 문서들을 대표들에게 배부하는 것이었다. 60페이지가 넘는 문서를 250부 정도 만들어야 하다보니, 복사기에서 갓 나온 복사용지는 뜨거워서 만질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복사되면 회의장에 가서 나누어주었는데, 회의장 문에 들어서자마자, 빙 둘러서 서로 가져가려고 쟁탈전이 벌어졌다. 사무실에 올라와 같이 일하던 직원에게 “They are selling like hot cakes"라고 농담을 했더니 웃어버린다. 올해가 일한지 25년째라면서, 자신은 유엔에서 일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에게, 나도 ”international civil servant"가 되고 싶다고 하니, 꼭 배워야 할 것을 지금 배우고 있다며 격려해준다. 각국 대표들은 문서준비, 회의준비, 문서복사 등의 일들이 다 쉬운 줄 아는데, 이러한 behind-the-scenes 작업이 없다면, 어떤 국제회의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시작부터 이러한 일들을 배워야지, 제대로 된 ‘국제회의’, ‘국제기구’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밤 10시50분에야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고, 양복은 땀으로 젖었지만, 소중한 것을 배우고 있음을 깨달으며 감사한 피곤함을 그대로 느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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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7월부터 그 해 12월까지 유엔본부에서 겪었던 저의 유엔인턴 경험담입니다. 제겐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었던 무척 소중한 배움이자 경험이었습니다.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대출해서라도 정말 꿈이 있다면 유엔인턴을 경험해봐라.'  - 김정태

2006.07.04

아침 7시50분, 뉴저지에서 뉴욕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니 인턴의 첫 하루가 시작됨을 비로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절로 감사와 기도가 나왔다. 3년 전인 2003년 가을, 뉴욕에서 어학연수를 시작, 힘들게 영어를 배웠던 기억이 선한데, 이제 유엔에 관한 영문논문을 들고서 이곳 유엔에서 오늘부터 인턴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3년이 지난 현재의 모습을 그 당시엔 상상도 못했다. 

 

30분정도 지나니, 버스가 맨하튼 42가 Port Authority역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유엔까지 전철로 두 정거장에다가 10여분을 더 걸어가야 하지만, 왕복 4달러하는 전철값도 아끼고, 걷기도 할겸, 무작정 걸어가기로 했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보니 20분 정도. 거리를 걷다보니 왼편에 "Grace"라는 이름이 전면에 씌여진 건물이 보인다. 여기에 온 것도 은혜이고, 앞으로도 은혜임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오전10시에 visitor's lobby에서 인턴쉽 담당자를 만나기로 했기에, 한시간 가량 남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근처 벤치로 갔다. 우연히 간 그곳은 "Dag Hammarskjold Plaza"란 곳이었다. 마침 가방에 Hammarskjold(2대 유엔사무총장)의 묵상집 <Markings>를 담아 왔는데, 신기하게도 그의 이름이 적힌 표지판 아래 벤취에서 책을 꺼내읽을 수 있었다.

 

 


약간 일찍 유엔으로 들어가, 구내서점에 가서 여러 책들과 자료들을 살펴봤다. 'UN Project'를 시작하기위해 필요한 자료들이 많았는데, 인턴에게는 10% 할인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기분 좋은 이야기도 들었다. 자주 오게 될 것이기에, 다시 약속장소로 가서 다른 5명의 인턴들과 함께 인턴쉽 오리엔테이션을 들었다. 소개를 해보니 중국, 독일, 프랑스, 체코, 영국에서 온 친구들이었는데, 다들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ID카드를 발급받고, 29층에 위치한 Departement for General Assembly and Conference Management(총회회의운영국)의 General Assembly and Social Council Affairs Division으로 들어섰다.

 

조용한 분위기의 사무실에 한 직원이 나를 보고서 인턴이냐고 물으며 웃으며 환대해준다. 곧바로 개인큐빅과 PC를 지정해주고서, 앞으로 supervisior 역할을 해줄 Mr. Alasaniya를 만났다. 앞으로의 진로와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의 업무와 더불어 며칠전부터 시작된 "불법 소형무기 거래금지에 관한 협약회의"에 참석해보라고 한다. 지하에 위치한 Conference Room에 들어서니 넓은 회의장에 191개국의 대표들이 알파벳 순으로 포진해있었다. 뒤쪽 어느 자리를 잡아 앉을까 했더니, supervisor가 맨 앞 단상 바로 뒷 좌석으로 데려가서, 나를 앉게 하는게 아닌가! 바로 앞엔 president와 secretary of the committee가 내게 등을 보이며 앉아 있었고, 그 앞으론 각국 대표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각 대표들의 시선을 받으며, 인턴 첫날의 본격적인 수업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미국으로 오기전 봄학기 대학원 수업에서 Conference Diplomacy란 수업을 들으며,어떻게 국제회의가 진행되며, 진행방식, 용어들을 배웠고, 모의국제회의에서 President의 역할을 맡아보기도 했지만, 그 실제현장에 노출된 것은 처음이었기에 그만큼 흥분되었다. 무언가 엄숙한 분위기의 예상과는 달리, 자유롭게 회의장을 오가는 사람들, 타 대표에게 가서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들 등 자연스런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5개국 대표들이 회의주제에 대한 자국의 의견을 피력했던 오전세션이 끝나고, 오후 3시에 재개된 세션에서는 본격적인 결의문 작성이라는, 국제회의의 정점을 경험할 수 있었다. 결의문 작성 시에는 191개국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어렵기에, 많은 경우 'Non-Paper'라는 임시결의문이 익명국가에 의해 제출되면, 그 문건을 바탕으로 뺄 것은 빼고, 첨부할 것은 첨부하는 형식으로 결의문 작성이 진행되게 된다. 참관한 이번 회의에서는 의장이 직접 'Presidnet's Non-Paper'를 제출했다. 이 임시결의문에 대해 각국이 바쁘게 손을 들고, 발언권을 요청한다. 의장이 "the floor is now given to ..."라 말하면, 해당 대표는 발언권을 확보하게 된다.

 

특히 아프리카 나라들의 열띤 참여와 의사진행이 눈에 띄었다. 시에라리온, 세네갈 등 소위 약소국들의 열띤 참여와 달리,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은 회의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국대표도 발언권을 확보해 기대를 했더니, "We would like to confirm that we fully support what the Japanese delegation has just said. Thanks."라는 짮은 언급으로 끝나버렸다. 콩고민주공화국 대표의 옆엔 북한이라 적힌 팻말이 있었지만, 하루종일 북한 대표를 볼 순 없었다.  

 

한 줄 분량의 내용에 대해서만 장장 2시간에 걸쳐, 각국의 수정제안, 첨가제안, 삭제제안 등 수많은 코멘트가 만들어졌다. 성공적인 국제회의가 되기 위해선 president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런 다양한 발언들에 적절히 대처하고 회의를 진행시키는 스리랑카 출신의 delegate가 돋보였다.

 

오후6시. 오늘의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올라오는 길에 한 직원이 "내일은 미국 독립기념일로 유엔이 휴일이어서 정말 다행이다"라고 말한다. 이번주 금요일까지 계속될 지루할 결의문 작성을 빗대어 말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5시간의 회의가 지루하진 않았다. 각국 대표의 다양한 발언들에 숨은 국제정치 논리를 파악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돌발적인 상황에서의 의장의 재치와 운영의 기술을 집중해 관찰해본 것도, 191개국 대표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다양한 표정들을 엿본 것도 흥미진진했다.

 

첫날부터 가슴벅차게 시작된 인턴쉽. 작년 중국 북경의 한 한국 대기업에서 인턴쉽을 했던 것이 대조된다. 자유로운 분위기와 통제된 분위기의 대조도 그렇거니와, 어떤 환경과 어떤 종류의 역할, 일이 나의 중심에 열정과 더 큰 기대감을 불어일으키는지 너무 확연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이다!"라고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오후 7시, 뉴저지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며, 자연스레 감사의 기도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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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cyworld.com/fanta1112 BlogIcon 테일 2010.04.08 05:07 신고

    정말 멋있습니다!! ㅠㅠ
    올해 초부터 자주 와서 게시글을 확인하지만 이 글은 작년 꺼라 지금 처음 보지만
    막 읽으면서 가슴이 뛰는 것이 .. ㅎㅎ
    멋진 포스팅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