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야기는 좋은 영감과 좋은 생각을 심어줍니다!


'2016년 가장 사랑받은 TED 10개 이야기'라는 블로깅에서 하나둘 영상을 찾아 휴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2016년 12월 29일부터 2017년 1월 5일까지 휴가) 짧은 시간 동안 임팩트있는 이야기들이 하루를 마감할 때 한 편씩 청취하기에 딱 좋습니다~


그 중에 '좋은 대화를 하기 위한 10가지 비법'이란 동영상도 무척 좋았습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어떤 분야에 항상 나보다 뛰어난 전문가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라" Everyone is an expert in something. 


"대화는 자신을 홍보/자랑하는 기회가 아니다"

Conversations are not self promotional opportunities.  


1분간 말할 때 우리는 약 260개의 단어를 쓰지만, 들을 때는 500개의 단어를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듣는 시간을 늘릴 때, 하루에 우리가 배우고 습득하는 지혜와 정보가 더욱 많아지게 되고, 집중해 듣는 시간을 통해 상대방은 더욱 마음을 열고 신뢰를 공유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2017년, 제게도 더 듣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셀레스트 헤들리가 말하는 '좋은 대화를 하기 위한 10가지 비법'을 떠올리며! :) 



동영상 바로가기

셀레스트 헤들리 (Celeste Headlee): 좋은 대화를 하기 위한 10가지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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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11]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2부 유엔에서 바라본 세계 

4) 나의 고객은 누구인가? 




5년간의 유엔에서의 근무는 내게 강의와 책을 통해서만 엿보았던 '국제'라는 세계에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기회였다. 처음에 맡은 업무는 홍보,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전략 및 아웃리치(다양한 이해관계자에 대한 전략적 접근) 등이었다. 당시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 홍보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국내 사례나 롤 모델이 없어 나는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사실 당시 유엔거버넌스센터의 홍보담당관(Communications and Outreach Officer)은 국내 소재 유엔사무소를 통들어서도 유일한 홍보관련 전문인력이었다. 이런 독특한 포지셔닝으로 나는 반기문 사무총장이 공식적인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할 때 외신기자를 담당하는 보좌역으로 차출되기도 했다. 4박 5일 동안 청와대에서의 이명박 대통령 내외 접견과 회담을 비롯해 모든 공식일정을 함께 하면서 나는 국제기구의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아웃리치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경험적으로 깨달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해서 필요하다고 발견한 전략의 핵심은 바로 고객가치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이었다. 사실 유엔의 업무에서는 구체적인 고객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죽했으면 유엔에 입사할 때 지원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활용되는 유엔의 8대 핵심역량(core competencies) 중 하나가 '고객지향'(client orientation)일까. 대부분의 기업에게 고객지향은 여러가지 기준 중 하나가 아니라, 불변의 DNA(조직문화)일 것이다. 하지만 유엔은 전 세계 정부간 조직(inter-governmental organization)으로서 특정 국가가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것과 달리 책임져야할 구체적인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 역시 매년 수억 원이 넘는 예산을 배정받아 내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개발도상국에 필요하다고 느끼는 주제를 발굴하고, 해당 주제에 대한 다양한 사업을 개발하면서도 도대체 내 고객은 누구일까라는 고민에 명확한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고객을 찾아 가치를 전달하라 

한번은 법무부에 난민지위 신청을 한 난민들이 센터에 찾아온적이 있다. 개발도상국의 굿거버넌스 증진을 목표로 하는 센터 입장에서 난민 이슈는 소관 업무가 아니었다. 당시 시청역 근처에 있던 센터의 200m 근처에 유엔난민기구(UNHCR)가 있었는데, 빌딩 앞에 걸린 유엔기를 보고 우리를 유엔난민기구로 오해한 것이었다. 이들은 이라크와 콩고 출신의 난민들이었는데, 이라크 난민의 경우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교갈등으로 살해위험을 받아 한국에 난민신청을 했다고 했다. 짧게나마 이들이 기구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니 무척 안타까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이곳은 유엔난민기구가 아니니 다시 그곳으로 찾아가세요" 정도였다.


이들을 돌려보내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무리 내 소관 업무가 아니라지만 유엔의 존재 미션을 생각해볼 때 '이건  아니다'라고 느껴졌다. '내가 만약 그 난민이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불안한 난민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떠올랐다. 우선 유엔난민기구를 자세히 찾아갈 수 있는 지도와 함께 국내에 난민 지원 사업을 펼치는 NGO 연락처와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포함해 나름대로의 media kit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찾아오는 난민들에게는 어떤 배경으로 난민이 되었는지 이들의 이야기를 먼저 경청했다. 5분이든 10분이든 잠시나마 공감하며 이야기를 들어줄 때 이들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media kit를 건네주고 인사를 할 때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도움은 받지 못했지만, 수없이 고맙다는 인사와 밝은 미소를 내게 건내주었다. 보이지 않는 고객을 파악하고, 고객에게 어떻게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빛이 보이던 경험이었다. 



나의 고객은 누구인가? 

통상 고객이 잘 보이지 않는 유엔에서 나는 고객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험은 현재 공공부문(1섹터), 기업부문(2섹터), 시민사회(3섹터) 등과 협력하며 임팩트비즈니스와 사회혁신 분야의 다양한 기획과 사업운영을 진행하는 내게 강력한 자산이기도 하다. '진짜 고객은 누구인가?'부터 시작해 '고객의 숨겨진 필요는 무엇인가?' '내가 고객이라면 나는 어떤 가치를 전달받길 원할까?'와 같은 단순해 보이는 질문에서 시작할 때 만들어지는 서비스나 프로그램은 그렇지 않을 때와 비교해 고객가치 창출이란 관점에서 확연히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고객의 필요와 가치를 찾아가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 등 다른 글에서 다시 충분히 다룰 예정이다.  


안젤리나 졸리가 난민캠프에서 한 소녀에게 건넨말이 최근 SNS를 통해 회자된 적이 있다. 외지에서 온 봉사자들에게 겁을 먹은 아이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가야, 네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거야" 도움을 받는 아이의 관점에서 안젤리나 졸리는 자신이 어떤 말을 해야할지 깨달았던 것이다. 그 순간 아이는 새로운 희망이자 나라의 미래와 같은 존재로 탈바꿈한다. 고객이 누구인지 아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출처: 페이스북 '오늘의 JPG' 



소셜이노베이터와 이노베이터의 차이 

이와 같이 소셜이노베이터가 항상 잊지 말아야할 질문은 '내 고객은 누구인가?'이다. 소셜이노베이터(social innovator)가 그냥 이노테이터(innovator)가 아니라 소셜(social)이란 거창한 수식어를 단 이유는, 직접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고객과 사용자의 이해관계까지 고려해야하는 숙명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학생으로 재학 중이든, 아니면 일반 회사에 다니든, 취업을 준비하고 있든 그 어떤 환경에서도 '내 고객은 누구일까?'라고 질문해 보아라. 그리고 숨어있는 고객을 발굴하고, 고객의 입장에서 어떤 가치가 필요한지 생각해본다음, 자신의 가용자원 내에서 가능한 가치를 전달해보아라. 이러한 고객중심의 가치발견과 가치전달의 경험을 하나의 작은 사이클로서 경험한다면, 소셜이노베이터로서 당신은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것이다. 



관련 연재글 바로가기


[연재10]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거버넌스 리더십)


[연재9]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일상에서 의미를 검색해주는 키워드가 있는가)


[연재8]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내가 경험한 문제에서 시작하면 지치지 않는다)


[연재7]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큰 행동에 앞서 작은 행동을 반복하라)


[연재6]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라)


[연재5]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내면의 비이성적인 소리가 들릴 때)


[연재4]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누구나 자신의 경계가 있다)


[연재3]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연재2]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연재1]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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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10]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2부 유엔에서 바라본 세계 

3) 소셜이노베이터의 리더십: 거버넌스




유엔본부 인턴십과 컨설턴트, 그리고 헤리티지재단에서의 짧은 객원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나는 내 생에 첫 풀타임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다. 외교안보연구원과 모 대형NGO에 서류심사와 면접까지 진행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결국 입사를 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차에 알고 지내던 후배에게서 오랜 만에 이메일 하나를 받게 되었다. "형, 유엔에 관심 많지 않았어요?" 공공기관에서 인턴을 하는 중 유엔거버넌스센터란 곳의 채용공고를 우연하게 봤는데, 딱 내 생각이 났다는 것이다. 


당시 공고된 채용분야는 홍보담당관이었다. 언론홍보나 커뮤니케이션 전공은 아니었지만, 일단 지원해보기로 했다. 서류와 영어논술을 마치고 면접에 참여하게 됐는데, 남자 지원자는 나와 다른 한 분이 더 있었다. 긴장을 풀기 위해 잠시 대화를 나눴는데, 그 분은 미국의 유명 사립대학원 석사를 졸업하고, 유창한 영어에 당시 국회위원 비서관으로 있던 분이었다. 나는 굳이 비교하자면 국내 국제대학원을 나왔고, 이제 서른살에 처음으로 직장을 구하는 취업준비생이었을 뿐이었다. 면접 결과 누가 채용되었을까? 



역량이 스펙을 이길 수 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채용절차를 주관한 팀장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왜 저였나요?' 그 분의 설명을 요약하면 '김정태 씨는 채용한 다음날부터 곧바로 홍보담당관 업무를 시작할 수 있을거라는 명확한 증거가 보였다'는 것이다. 지원서류를 제출할 때 나는 유엔관련 석사논문과 더불어 그 동안 인터넷뉴스인 오마이뉴스와 뉴스파워 등에 기고한 유엔 관련 기사([속보] 첫 한국인 UN사무총장 탄생할까? 등)와 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원 시절 작성해 코리아타임즈에 기고한 영문칼럼(Forte of Korean UN Secretary-General) 등을 함께 첨부했다. 관련 포트폴리오를 첨부하라는 요청사항은 없었지만, 관련 전공이 아니고 관련 직장경험도 없던 내게는 꼭 선보여야 할 카드였다. 전공이나 자격증, 학위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역량의 증거물들이 얼마나 강력한 메시지가 되는지 나는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해당 경험은 몇년 후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를 쓸 때 '스토리'(역량)가 '스펙'(자격증 등)을 이길 수 있다는 기본 컨셉의 배경이 되었다. 



거버넌스와의 만남  

유엔거버넌스센터(UN Project Office on Governance)는 2006년 9월에 한국에 설립된 유엔사무국 산하기관이다. 나는 이곳에서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생소한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지금도 이 개념은 '미래사회에 조직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가?'와 '우리는 어떻게 공동의 목표를 멋지게 달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전략 프레임으로 활용되고 있다. 나는 이 프레임이 동일하게 소셜이노베이터의 조직에 대한 관점이자, 소셜이노베이터의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거버넌스라는 알쏭달쏭한 단어는 어떤 뜻일까? 사실 내 블로그(www.theUNtoday.com)에 검색해서 들어오는 유입 키워드 중 가장 많은 단어가 바로 거버넌스다. 거버넌스의 의미를 알고 이를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 1%(50만명)에 속할 만큼 많지 않은데, 거버넌스는 기술적으로는 '의사결정 과정'(the process of decision-making)을 의미한다. 과거 그러한 의사결정 과정은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권위적인 정부의 정책이라던지 카리스마가 강한 리더가 있는 조직이 그렇다. 이에 반해 참여성, 투명성, 효과성 등의 3대 특징을 가진 거버넌스를 굿거버넌스(good governance)라고 한다. 


거버넌스 분야의 최고 석학 중 하나인 가이 피터스 교수는 "거버넌스는 steering(조향 또는 조정)이다"라고 간결하게 정의한다. 이를 바탕으로 정의해보면 거버넌스란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핵심 이해관계자가 함께 참여하여 의사결정을 조정해가는 과정'이다.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그러한 핵심 이해관계자는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 시민사회 등이 해당되고, 국정(국가) 거버넌스는 정부, 기업, 시민사회, 학계 등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조직 단위에서의 거버넌스는 무엇이며, 핵심 이해관계자는 누구일까? 



개인이면서도 한 팀으로 움직이는 축구팀

거버넌스는 마치 11명이 참여하여 펼치는 멋진 축구 시합과도 같다. 멋진 축구시합이란 달리말해 11명의 선수들이 시합에서의 승리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공격수나 수비수 등 각자의 포지션을 가지고 참여하되(참여성), 필요한 경우 격의 없는 의견교환과 포지션에 상관없이 필드를 넘나들어(투명성), 한 팀으로서 최고의 팀워크와 사기를 높여 멋진 이야기를 만드는(효과성) 것이라 볼 수 있다. 11명의 선수들은 누가 시키거나 통제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아니다. 이들은 각자 공통된 목표에 대한 주인의식(ownership)을 가지고, 항상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속도감있게 움직인다. 주장이나 감독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지시한다면, 이들은 항상 명령과 통제만을 기다릴 뿐 각자가 가진 엄청난 잠재력을 활용하거나 신뢰에 기반한 규모있는 집단행동의 에너지를 분출할 수 없게 된다.  


거버넌스는 복잡계(complexity)라는 과학이론과 맞닿아있다. 자율과 자유가 허용되는 시스템에서는 일사분란한 통제와 수직적인 위계질서로는 만들어내지 못하는 창의성과 혁신성의 발현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이다. 보이기에는 느슨하고 질서가 없다고 느껴지는 조직이 성과가 더 높을 수 있는 이유는, 모든 조직 구성원이 멋진 축구팀에서처럼 각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버넌스를 위해 필요한 리더의 절제 

거버넌스가 잘 기능하기 위해서는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리더의 일방적인 명령과 통제는 구성원의 섬세한 주인의식이 싹트지 못하게 하는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가 절제하지 못하고 자신을 드러내며, 조직의 의사결정권이 자신만의 고유한 권한임을 강조하는 순간 구성원들은 더이상 자신의 포지션을 넘나들며 공통의 목표 달성을 위해 헌신할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한 사람의 강력한 리더와 열 명의 수동적인 부하직원으로 구성된 팀과 다섯 명의 공동리더로 구성된 팀 중 어느 팀이 장기적으로 성과를 내게 될까?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나는 이러한 거버넌스 리더십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그 중 하나는 유엔의 공식잡지 <유엔크로니클> 한국어판을 기획해 발행하는 '유엔크로니클코리아'(UN Chronicle Korea)라는 청년대학생 주도의 국제이슈 그룹이다. 이 그룹에는 강력한 리더나 대표가 없이 수평적인 거버넌스 체제로 운영된다. 외부에서 그룹을 대표하는 GM(General Manager)이라는 사람은 있지만, 모든 의사결정은 그룹 구성원의 토의를 통해 결정된다. 이전에 거버넌스라는 개념을 배운적도 없고, 수평적인 역할과 의사결정 참여를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은 처음에 많은 혼란과 갈등을 겪는다. 이러한 갈등 중 하나는 '왜 우리는 강력한 리더가 없고, 각자 주체적으로 결정해야 하는가?'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거친 이들은 '거버넌스 리더십 훈련이 인생을 바꾸었다'고까지 말한다. 회사에 들어가서도 수동적인 구성원이 아니라, 적극적인 주인의식을 가지고 업무에 참여하자 상사의 평가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거버넌스는 모든 구성원이 리더(주인)처럼 행동하게 만드는 강력한 프레임이다. 




소셜이노베이터와 거버넌스 

거버넌스가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점은 문제의 해결 과정에 특별히 주목하는 소셜이노베이터와도 긴밀히 연계된다. 또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동일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하는 소셜이노베이터의 모습은 거버너스를 통해 주인의식을 갖춘 핵심 이해관계자의 모습과 일치한다. 흔히 마주치게 되는 소셜이노베이터에게서는 통상 강력한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는다. 카리스마는 추종자를 끌어모을 수는 있지만, 자신과 비슷한 역량있는 리더들을 초청하지는 않는다. 소셜이노베이터에게 필요한 사람은 추종자가 아니다. 자신과 같은, 혹은 자신보다 기량이 뛰어난 사람들과 한 팀을 이루어 소셜이노베이터는 사회문제라는 '경기'에 뛰어든다. 결국 '경기'는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한 팀으로서의 개인들'만이 참여할 수 있고, 그런 팀이어야 혹독한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소셜이노베이터 당신의 리더십은 카리스마인가 거버넌스인가? 당신이 초대하는 사람은 추종자인가 아니면 당신과 같은 주인의식을 갖춘 파트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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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9]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일상에서 의미를 검색해주는 키워드가 있는가)


[연재8]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내가 경험한 문제에서 시작하면 지치지 않는다)


[연재7]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큰 행동에 앞서 작은 행동을 반복하라)


[연재6]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라)


[연재5]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내면의 비이성적인 소리가 들릴 때)


[연재4]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누구나 자신의 경계가 있다)


[연재3]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연재2]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연재1]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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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9]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2부 유엔에서 바라본 세계 

2) 일상에서 의미를 검색해주는 키워드가 있는가 




<쓰면 이루어진다>라는 책이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머리 속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구체적인 날짜와 함께 글로 표현해보라는 것이 핵심 메시지다. 물론 쓴다고 그대로 이루어지는 법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구체적인 고민과 열정이 있어야만, 구체적으로 펜을 가지고 쓸 수 있는 희망사항도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글로 구체화된 목표는 우리의 무의식에 각인되어 그렇지 않을 경우 일상 생활에서 지나치기 쉬운 미세한 정보나 기회를 포착해낼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고 한다. 인터넷에 수 많은 정보가 있지만, 우리가 특정한 키워드로 검색하기 전에는 이러한 정보는 '의미없는' 사실에 불과하다.



키워드가 있으면 일상의 경험이 달라진다

예전에 스토리텔링이라는 주제를 '키워드'로 밀도있는 연구와 관찰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내 관점은 '이야기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어떻게 주는가?'였는데, 어느날은 횡단보도에 서있다가 기가막힌 현수막을 발견했다. 광고 현수막이었는데, 커다란 글자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당신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곳'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광고하는 이곳은 과연 어떤 회사, 어떤 제품, 어떤 서비스일까? 그곳은 비뇨기과 병원이었고, 광고는 남성의 자신감을 회복시켜줄 수 있는 수술에 대한 것이었다. '새로운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갈망하는 누군가가 아무런 방비 없이 이런 광고를 봤을 때, '새로운 인생'을 구입하기 위해 병원에 방문할 확률은 상당히 높다. 이는 제품이나 상품의 특징이 아닌, 그것이 약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의 관점(스토리텔링)을 활용한 전형적인 광고의 특징이다. 과거에도 이런 유사한 현수막을 봤었지만, 내 관심과 주의를 끌지 못했다. 그런데 왜 현수막에 내가 집중했을까? 해당 키워드를 내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가지 키워드를 만들다

'국제'라는 단어는 무척 모호한 개념이었기에 나는 보다 구체적으로 국제라는 방향을 글로, 그리고 가능한 목표 단위로 써보기로 결정했다. 언제라도 쉽게 눈에 띄도록 일기장에 노란색 포스트잇을 붙이고 3가지 희망사항을 기록했다. 첫째는 '뉴욕의 유엔본부 인턴십에 합격하기'였고, 둘째는 '뉴욕 유엔본부에 가기 위해 필요한 항공료를 장학금으로 받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턴십이 끝난 후에 경험을 나누는 대중강연에 참여하기'였다. 가능성이 있던 없던 이렇게 글로 표현해보니 '국제'라는 모호하고 커다란 방향만이 존재했던 내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가 명확해졌다. 


사실 이러한 희망사항은 그냥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자신의 방향과 바램, 그리고 자신이 도전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이해한 다음, 상상력을 버무리고 용기를 가져야하기 때문이다. 소셜이노베이터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문제의 창의적이며 혁신적인 해결을 위해 달려가는 소셜이노베이터에게야말로 구체적인 키워드를 뽑아내고, 오늘부터 30일 이후까지 그리고 1년 동안 '불가능하지 않고 도전이 가능한' 세부목표를 글로 써보는 것은 일종의 '준비운동'과 같다. 통상 소셜이노베이터는 행동에 강하고, 일단 뛰어들면서 배우는 경향이 있지만, 잠시 침착하게 목표를 세우는 것은 행동을 방해하는 거추장스러운 의식이 아니다. 보다 큰 점프를 위해 몸을 웅크리는 준비라고 할까. 


3가지의 희망사항은 그후 어떻게 됐을까? 희망사항을 적으면서 정확한 날짜를 기록했다. 날짜를 기록한다는 것은 희망사항이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행동이다. 신기하게도 3가지 희망사항은 1년안에 모두 이루어졌고, 각각의 희망사항 옆에 그것이 실현된 날짜를 나는 기록해두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목표를 글로 썼더니 신기하게 이루어졌다'는 <시크릿>과 같은 책의 비밀스러운 접근이 아니다. 소셜이노베이터와 시크릿 신봉자와의 커다란 차이점은 전자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때로는 환경을 바꾸는 행동에도 적극 나서는 반면, 후자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이 신비롭게 이루어지도록 환경과 운명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내게 첫번째 목표인 유엔인턴십 합격은 2년에 걸쳐 지원했음에도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앞서 연재글에서 언급했듯이 내게 어깨를 빌려 준 '거인멘토'였던 박수길 대사님의 배려로 기회를 얻게 되었다. 우연히 대사님과 함께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요즘 고민과 앞으로의 진로를 이야기하다가 유엔인턴십 기회를 얻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유엔인턴십이 내게 하나의 키워드이자 명확한 목표가 아니었다면, 굳이 대사님과의 만남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낼 이유가 없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대사님의 배려라는 선물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둘째 목표인 장학금의 기회도 예상하지 못했던 기회를 통해 얻을 수 있었다. 석사논문으로 유엔 관련 논문을 쓴 기여로 유엔한국협회에 연결되어 소정의 장학금을 받게 된 것이다. 인천에서 뉴욕까지 왕복 항공권을 사기에 충분한 금액이었다. 그리고 6개월의 뉴욕 유엔본부에서의 인턴십과 컨설턴트 경험이 끝난 후 나는 초청을 받아 모교에서 내 인생의 첫 대중강연을 하게 됐다. 



소셜이노베이터에게는 자신만의 키워드가 있다 

지금도 가끔 나는 항상 휴대하며 기록하는 '몰스킨' 메모장에 포스트잇을 붙인다. 포스트잇에는 새로운 키워드들이 기록된다. 키워드들은 내 평범한 일상과 환경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있는 정보와 이야기를 '검색'해준다. 소셜이노베이터에게는 이러한 키워드들이 많다. 키워드는 구체적인 목표를, 구체적인 목표는 내가 만나야할 사람과 방문해야할 장소, 그리고 시작해야할 작은 행동을 가리킨다. 오늘 여러분의 포스트잇에는 어떤 키워드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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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유엔에서 바라본 세계 


[연재8]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내가 경험한 문제에서 시작하면 지치지 않는다)



1부 국제활동가로서의 첫 걸음 


[연재7]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큰 행동에 앞서 작은 행동을 반복하라)


[연재6]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라)


[연재5]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내면의 비이성적인 소리가 들릴 때)


[연재4]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누구나 자신의 경계가 있다)


[연재3]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연재2]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연재1]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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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8]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2. 유엔에서 바라본 세계 

1) 소셜이노베이터가 지치지 않는 이유 




국제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누린 여러 특권 중 하나는 많은 기회들에 도전할 자격이 생긴다는 점이다. 대학원생이라는 신분과 더불어 '국제'라는 꼬리표가 붙은 국제대학원생은 내 경험상 기업이나 공공기관, NGO 등 어느 곳에서나 호감을 가지는 대상이었던 것 같다. 나 역시 다양한 프로그램과 프로젝트, 그리고 인턴십 등에 지원을 했다. 그 중에 하나는 당시 외교통상부의 인턴십이었다. 유급인턴과 무급인턴으로 구분되어 지원을 받았는데, 어떻게든 외교통상부에서의 인턴을 하고 싶어 무급인턴에 지원했고 1지망으로 원했던 유엔과에서 약 2개월의 인턴근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내 인생의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가 시작됐다.


유엔사무총장 선거 캠페인의 일부가 되다 

외교통상부(현재 외교부) 유엔과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의 유엔사무총장 출마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금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었다. 내게 주어진 첫번째 과제는 "역대 유엔사무총장의 인적사항과 사무총장 선출 배경 등에 대한 정보를 찾아 문서로 만들어라"였다. 내가 인턴을 시작했을 당시는 몇몇 유력한 국제적인 인사들이 유엔사무총장에 도전하겠다며 다양한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었고, 우리나라 정부는 아직 유엔사무총장 선거에 참여하겠다는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던 때였다.


'유엔사무총장이야 유명한 분들이니깐 쉽게 자료를 찾겠지'라고 생각했던 조사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국어로 된 제대로 된 자료가 전무했고 결국 외국 웹사이트와 영문자료를 참고해서 역대 유엔사무총장의 인적사항과 사진, 주요 약력, 선출된 배경 등을 요약한 한 페이지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비록 인턴이었지만 국가적으로 중요한 업무에 참여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낌과 동시에 내겐 작은 불만족도 싹트기 시작했다. 유엔 그리고 유엔사무총장이라는 중요한 기관과 리더십에 대해 잘 정리된 1차 자료가 왜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문제의식이었다.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첫 만남 

가끔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님이 유엔과에 내려와 '은밀한' 선거캠페인 준비에 참여하는 직원들을 격려해주시기도 했다. 한번은 유엔과장님이 사무실의 전체 직원 한명 한명을 돌아가며 소개했다. 제일 마지막으로 인턴 자리까지 찾아온 장관님에게 과장님은 모든 직원들이 듣게끔 큰 소리로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여기는 무급인턴 김정태 씨입니다." 왜 하필 '무급'이라는 표현을 붙였을까? 어리둥절 얼굴이 빨개졌지만 반기문 장관님은 내게도 따뜻한 악수를 청해주셨다. 이 분을 훗날 잠시나마 외신보좌역으로 함께 했고 내 석사논문의 한국어 번역본인 <살림지식총서 유엔사무총장>을 직접 선물해 드리는 등 다양한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그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불만족을 논문 주제로 연결하다 

인턴을 마치면서 내가 써야할 석사논문의 주제가 보다 뚜렷해졌다. 유엔사무총장 캠페인에 작게나마 참여하면서 느꼈던 유엔과 유엔사무총장의 리더십에 대한 주제였다. 인턴으로 있으며 조사했던 많은 참고자료가 있어 주제를 비교적 쉽게 정할 수 있었는데, 논문 제목은 "두 영역의 외줄을 타는 유엔사무총장: 유엔사무총장의 리더십에 대한 분석적 접근"(The UN Secretary-General "Walking a Two-Scope Rope": An Analytic Approach to the Secretary-Generalship)으로 정했다. 유엔사무총장이 '국제정치의 현실'과 '개인적인 리더십 특성'이라는 두 가지 영역 사이에서 미묘한 줄타기를 해야하는 존재라는 가설에 따라 역대 유엔사무총장과 유엔과 국제분쟁의 다양한 사례를 교차 분석한 논문이다. 


논문을 쓰면서 대부분 참고한 자료는 영문자료였다. 특히 역대 유엔사무총장이 남긴 회고록과 전기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료구입비가 필요했는데, 내 상황으로는 무척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서창록 교수님께 찾아가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교수님은 놀랍게도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더니 누군가에게 내가 가져온 30여권의 해외 원서 리스트의 책 모두 구매하라고 지시하셨다. 그렇게 내가 필요한 모든 자료가 준비됐고, 약 3개월에 걸쳐 30여권의 원서와 별도의 30편의 관련 논문을 꼼꼼이 읽어나갔다.


이때의 경험이 다른 장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내가 연구논문을 쓰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하는데 있어 크나큰 자신감의 원천이 된 것은 확실하다. 그 어떤 어려운 주제라도 내가 흥미를 갖는 적절한 범위의 가설(hypothesis)을 세우고, 그 범위 내의 굵직굵직한 선행연구와 최신사례 등을 차근차근 읽어나갈 경우 유용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때부터 나는 내가 잘 모르는 주제, 하지만 관심이 있는 분야는 인터넷서점에 해당 키워드로 검색을 해서 관련 서적을 대량 구매해 먼저 읽어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소셜이노베이터가 자신의 전공이나 전문분야가 아님에도 어떤 특정 이슈에 진입하는 방법이 바로 이와 같다. 소셜이노베이터는 해당 문제와 관련된 선행연구를 통해 '무엇이 실제 효과가 있으며'(what works) '무엇이 실제 효과가 없는지'(what does not work)를 교차 분석하면서 제3의 대안이나 보다 혁신적인 해결책을 모색해간다. 



내가 경험한 문제에서 시작하면 지치지 않는다

논문 작업이 무척 힘들었다고 말한 대학원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논문작업이 너무나 행복했다. 깊은 밤 홀로 자취방에서 아무도 읽을 것 같지 않은 자료를 읽어가는 시간들이 나는 가슴 벅찼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것이 내 개인적인 불만족으로부터 석사논문 주제를 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개념적이며 관념적인 주제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공감한 문제에서부터 시작할 때 그것이 논문이든 프로젝트이든 비즈니스 기획이든 그 모든 과정은 벅차고 행복할 수 밖에 없다. 논문이 훗날 대학원 최우수논문상을 타고, 저널에 실리고, 해외 컨퍼런스에 가서 발표하고, 다시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던 것은 내가 얻었던 부수적인 선물일 뿐이었다. 


소셜이노베이터가 반쯤은 흥분한 상태로 느껴지고, '이 사람은 왜 저리 들떠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자신이 문제라고 느끼는 주제에 뛰어들 때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럽고 불편한 과정도 이들에게는 가슴 벅찬 경험이 되곤 한다. 



논문 원본(영문)은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등에서 다운로드 확인이 가능하며, 한국어 요약 형식으로 출간된 <유엔사무총장>(살림지식총서)도 있다.  

http://me2.do/IM5Jnxo2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395930&cid=505&categoryId=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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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국제활동가로서의 첫 걸음 


[연재7]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큰 행동에 앞서 작은 행동을 반복하라)


[연재6]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라)


[연재5]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내면의 비이성적인 소리가 들릴 때)


[연재4]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누구나 자신의 경계가 있다)


[연재3]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연재2]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연재1]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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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7]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1. 국제활동가로서의 첫 걸음

6) 큰 행동에 앞서 작은 행동을 반복하라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이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같은 외국인 리더가 연사로 참여한 강연장에 와있다고 상상해보자. 강연을 끝내고 이들이 묻는다. "이제 질문을 받겠습니다. 질문 있습니까?" 이때 당신은 질문을 할 수 있을까? 특별히 첫 질문을 할 수 있을까? 만나고 싶은 기회이지만, 정작 기회가 왔을 때 우리는 막상 손을 들거나 행동을 취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얼마전 '우리는 왜 질문을 하지 않는가?'라는 주제의 EBS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어 많은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 진행된 국제컨퍼런스의 기자회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주최국의 기자(한국인 기자)에게 질문 발언권을 특별히 주고 싶다며 한국 기자들의 질문을 기다렸다. 그리고 매우 흥미로운 상황이 시작됐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던 것이다. 오바마는 '영어 통역이 필요하면 통역을 활용해도 됩니다'라며 언어의 부담감을 갖지 말라며 다시 기다렸지만 침묵은 여전했다. 이때 중국인 기자가 손을 들고 발언하기 시작했다. '중국인이긴 하지만 제가 아시아를 대표해서 질문을 해도 좋습니까?' 예상치 못한 중국인 기자의 질문에 오바마는 한국인 기자에게 질문권을 주었다고 답변하면서 한국인 기자들이 원한다면 중국인 기자의 질문을 받겠다고 답변했다. 한국인 기자들은 이번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참 흥미로운 상황이군요' 오바마 대통령은 결국 중국인 기자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다. 당황스러워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과 침묵하며 긴장하고 있는 한국인의 표정이 교차하면서 영상은 '한국인은 왜 질문을 하지 않는가?'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큰 목표에 앞서 필요한 작은 목표 

'목표를 높게 잡아라'(Aim High)라는 주제의 캠프에 가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캠프의 주제에 맞추어 강연제목을 '높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3가지 전략'으로 잡았는데, 첫번째로 소개한 전략은 '큰 목표에 뛰어들기 전 작은 목표(aim small)에 많이 도전하라'였다. 이는 나폴레옹이 활용해 유명해진 'Divide and Conquer'(큰 문제를 쪼개서 정복한다)라는 경영전략과 일맥상통한다. 처음부터 도전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과제를 수행이 가능한 단위로 잘게 나누어 하나씩 접근하거나, 규모는 작지만 유사한 과제에 충분히 많이 도전함으로 자신감을 배양하는 방법이다. 


소셜이노베이터에게 이러한 '분할정복법'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 어떠한 복잡한 사회문제도 시작부터 문제의 해결 방법을 고민하며 골치아퍼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어떤 문제가 자신이 뛰어들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순간,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수소문해 찾아가 자문을 구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또는 해당 분야의 배경과 역사, 그리고 사례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것으로 긴 여정의 첫 걸음을 시작할 수 있다. 그 다음 단계로 취해야할 행동은 첫 걸음을 떼고나서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작게 접근하면서 큰 문제를 해결한다'는 관점은 소셜이노베이터가 흔히 구사하는 이노베이션 전략이다. 이런 전략이 앞서 오바마를 당황스럽게 한 상황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면 어떻게 가능할까? 



코피 아난 UN사무총장이 '질문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사진1] 질문자를 발견하고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코피 아난 당시 유엔사무총장



코피 아난이 유엔 사무총장이었을 때 서울대를 방문해 '유엔과 한국의 관계'라는 주제로 공개특강을 한 적이 있다. 700여명이 넘는 인원이 가득찬 대강당에서 특유의 유머감각과 카리스마있는 언변으로 청중을 감동시킨 코피 아난이 질문을 받고 싶다며, 청중에게 '질문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앞서 오바마 대통령의 기자회견 처럼, 대강당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15초가 지났을까? 질문자를 찾으며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면서 조금씩 당황스러워하는 코피 아난은 다행히 누군가 손을 든 것을 발견하고 검지 손가락으로 그 사람을 정확하게 가리켰다(사진1). 


[사진2] 코피 아난 당시 유엔사무총장에게 첫번째 질문을 던지는 한 참가자


첫번째 질문의 기회를 받은 그 사람은 바로... 였다.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질문을 한다는 생각에 긴장을 해서인지 나는 그 흔한 '강연 감사의 인사'나 자기 소개를 생략하고 곧바로 잘문을 던졌다. "UN 사무총장의 리더십에 대해 사무총장님은 스스로 어떻게 정의하고 싶습니까?" 그리고 '고맙다'라는 표현도 없이 자리에 앉았다. 순간 흥미로운 소재를 찾던 YTN 돌발영상팀에게그 장면은 너무나 좋은 소재였다. 졸지에 나는 당일 메인뉴스에 '오늘의 돌발영상'으로 소개됐다(사진2). 당시 모든 사람이 수 많은 질문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하필 내가 첫번째 질문을 하게 되었을까? 보다 정확히는 첫번째 질문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나는 어디에서 얻었을까?



모든 수업마다 반드시 첫번째 질문을 

그 해프닝이 있기 1년 반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국제대학원 첫 학기의 실망스러운 성적을 확인하고 두번째 학기를 기다리는 시점에서 많은 스트레스가 있었다. 일기에 "대학원 수업이 생각했던 것같이 쉽지 않다. 영어 원서들을 읽어도 이해가 가지 않으니 짜증도 나고 과연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든다."고 적었던 날도 있었다. 똑같은 대학원 생활이 반복되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스스로에게 변화를 주어보기 위해 결심한 것이 있다. 그것은 '2학기에는 모든 수업마다 항상 첫 질문을 하도록 해보자'였다. '자신감 넘치는 대학원 생활'이라는 과제는 내게 너무 큰 목표였기에, 일단 '수업시간에 첫번째로 질문하기'라는 작은 목표를 설정했다. 


대개의 경우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질문있나요?'라고 물으면 평균 10초정도의 침묵이 있었다. 나는 그 10초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첫번째 질문이 있은 다음부터는 질문에도 경쟁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질문이 없더라도 일단 손을 들었다. 질문보다는 '손을 드는 행동' 그 자체가 '자신감있고 후회하지 않는 대학원 생활'을 이루기 위해 내가 이루어야할 '작은 목표'였다. 매 수업마다 첫번째 질문을 휩쓸어가면서 놀라운 변화가 시작됐는데, 2학기 성적이 그 변화의 열매였다. 모든 과목에 A+를 맞은 것이다. 입학 때는 아무런 장학금도 받지 못했지만, 3학기부터는 단 1명에게 수여되는 전액장학금을 받기 시작했다. 


코피 아난에게 서울대에서 '큰 질문'을 던지기 전 나는 무수히 많은 '작은 질문'을 던졌다. 1년 반 동안 모든 수업은 물론이고 외부에서 내가 참여했던 포럼이나 세미나에서도 가급적 질문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 '작은 목표'가 쌓이고 쌓이니, 그 전에는 결코 내가 도전할 수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큰 목표'도 크게 두려워지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결코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코피 아난이든 오바마든 내가 만나고 싶은 기회가 왔을 때 선뜻 팔을 내밀어 붙잡는 것도 불가능할 확률이 높다. 코피 아난에게 첫번째로 질문할 용기를 내가 어떻게 가졌는지에 대한 의문이 이제 풀렸을 것이다. 그 공식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기회에서의 첫번째 질문 전에 비공식적이고 편한 공간에서 셀수 없이 많은 첫번째 질문을 연습했기 때문이다. 큰 기회에 앞서 작은 기회가, 큰 도전에 앞서 작은 도전이 필요하다. 



당신도 손을 들 수 있습니까?

소셜이노베이터는 큰 행동에 앞서 필요한 작은 행동의 가치와 의미를 아는 사람들이다. 현란한 무대에서의 멋진 공연을 위해 우리는 연주자가 무대 뒤와 밖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자잘한 연습과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소셜이노베이터는 무수히 많은 작은 행동의 언덕을 넘어, 큰 행동이라는 산에 이르른다. 모든 상황과 맥락이 우리에게는 작은 행동을 취할 기회이다. 일단 손을 들어보아라. 손도 들어본 사람이 계속 들게 된다. 소셜이노베이터의 시작은 크게 시작되지 않는다. 소셜이노베이터는 작게 시작한다. 



* 이로써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연재의 1부를 마쳤습니다. 2부는 저의 유엔에서의 경험과 관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전체 글은 총 12부~15부까지 기획되었습니다. 많은 관심과 의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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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6]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라)


[연재5]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내면의 비이성적인 소리가 들릴 때)


[연재4]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누구나 자신의 경계가 있다)


[연재3]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연재2]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연재1]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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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6]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1. 국제활동가로서의 첫 걸음

5)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라 



국제활동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떠올려보는 '국제대학원'. 김영삼 정부 시절 '세계화'라는 국정목표에 발맞추어 세계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도입된,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커리큘럼이었다. 국가 정책으로 설립된 국제대학원은 초창기에 국책대학원으로서 입학한 모든 신입생들에게 전액 장학금, 노트북과 더불어 해외탐방과 인턴십 비용까지 제공했다. 요즘 자주 논의되는 '빅데이터' '드론' '사물인터넷'과 같이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키워드가 '국제'였다. 국제에 대한 아무런 배경지식과 어디에서 출발해야 할지 몰랐던 나는 일단 국제대학원에 입학해야겠다고 느꼈다.


발목을 잡히거나 어깨에 날개를 달거나 

그런데 우선 영어가 문제였다. 2년 동안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것도 그렇고 석사논문 역시 영어로 제출해야 했다. 게다가 무엇보다 입학을 위한 선발 면접도 영어로 진행하게 되는데, 당시 나는 토익성적도 없었거니와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꽤 불편했다. 수많은 고민 끝에 6개월 간의 한시적인 '어학연수'를 뉴욕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국제라는 분야를 가다보면 결국 영어 때문에 발목이 잡히든 또는 어깨에 날개를 달던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느꼈다. 


뉴욕시립대학교 바룩칼리지에서 오전에는 '외국인을 위한 영어학습'(ESL)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도서관에서 열심히 단어와 숙어를 외웠지만 3개월이 지나가도 영어 실력, 특별히 말하기에 뚜렷한 진보를 느낄 수 없었다. 남은 시간은 이제 딱 3개월, 조바심이 생겨났다. 과감히 큰 도움이 되지 않던 도서관 출입을 멈추고, 외국인을 만나 말벗이 되어주는 비영리단체에 가서 다양한 현지인들과 매일 1시간씩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분들에게 빈 종이를 주고 "제가 말하는 동안 문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이해가 되지만 실제로는 쓰지 않는 어색한 표현이 있으면 무조건 저를 멈추게 하고, 종이에 정확하고 더 좋은 표현을 써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말하기 연습 파트너들은 내 요청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문장이 끝내가 어려울 정도로 이들은 내 말을 칼 같이 막았고, 시간이 끝날 때가 되면 열장이 넘는 종이를 받아 귀가할 때도 있었다. 집에 와서는 잘못된 표현을 더이상 쓰지 않도록 종이에 쓰여진 '올바른 표현'을 계속 반복해 외웠다. 대화를 나누기 직전 빈 속에 콜라를 마시고 인위적으로 혈당을 올린 적도 수없이 많다. 단기혈당 상승효과로 인해 마치 술을 마신 듯 말이 많아질 수록 내가 배워가는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던 영어 발음 문제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라는 영어 우화 책과 성우의 녹음 CD를 60번 이상 반복해 읽고 들으면서 해결했다. 성우의 발음을 따라가며 최대한 똑같이 말하기를 연습하자,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 특유의 리듬과 엑센트를 왠만큼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3개월이 다시 지나자 뭔가 변화가 느껴졌다. 더이상 머리 속에 영어 문장을 조립한 뒤에 말하지 않게 됐다. 빠르지는 않았지만 입을 통해 영어를 표현하면서 문장과 생각을 완성해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결국 6개월 만에 국제대학원 입학과 국제활동가로서 활동하는 필요한 최소한의 영어가 준비된 것이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다 

2년간의 국제대학원 생활을 딱 한 문장으로 요약해보라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다." 살다보면 우리의 부족한 경험과 지혜로는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들에 감히 다가서기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럴 때 우리의 경험과 지혜는 현재의 수준을 뛰어넘는 도약이 필요한 데, 그러한 도약은 해당 분야에 '거인'과 같은 멘토들이 제공하는 어깨에 올라탈 때 가능해진다. 예전에는 아무리 까치발을 들고 기웃거려도 보이지 않는 세계도 '거인'이 친절히 제공하는 어깨에 올라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는 시야에 따라 세계가 달라진다는 말을 나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가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이작 뉴턴 역시 "내가 만약 다른 이들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거인들이 어깨에 올라섰기 때문이다(If I have seen further, it is by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국제대학원에서 만난 거인은 지도교수였던 서창록 교수님(현 휴먼아시아 대표)과 2년 동안 조교로 도와드렸던 박수길 대사님(전 주유엔대표부 대사)이었다. 서창록 교수님은 내게 뉴욕대 공공행정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공공행정을 접할 기회와 더불어 뒤에서 소개할 석사논문을 쓰는 데 필요한 자원과 재원을 기꺼이 제공해주셨다. 박수길 대사님은 유엔에서의 경력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내가 두 차례 꿈꾸고 도전했지만 결국은 합격하지 못했던 뉴욕 유엔본부에서의 인턴 기회를 신기하게 만들어주셨다. 두 분이 제공해주시는 어깨에 올라서는 순간, 내게 감히 꿈꾸지 못했던 기회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기회의 문과 그 문을 여는 열쇠

'기회의 창'(window of opportunity)이라는 표현이 있다. 나는 거인들과의 만남을 아예 '기회의 문'(door of opportunity)이라 부르고 싶다. 거인들이 기꺼이 제공하는 어깨에 올라서서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수준의 시야와 관점을 확보한다는 것은 단지 창을 통해 기회를 엿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거인과의 만남은 내가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세계로의 출입구가 생겨났음을 뜻한다. 단,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영어실력과 같이 개인이 갈고닦아야 하는 핵심역량이 필요하다. 역량은 '기회의 문을 여는 열쇠'와도 같다. 아무리 '기회의 문'이 많아도 스스로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없으면 '기회의 문'도 무용지물일 수 있다. 거인들이 문을 제공해도, 문을 열고 들어가는 열쇠까는지 제공해주지 않는다. 이러한 소셜이노베이터의 핵심역량과 방법론은 나중에 다시 다룰 것이다. 


소셜이노베이터에게 기회는 사람을 통해서 온다. 특히 자신의 현재 수준의 역량과 경험으로는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환경일 때 특별히 거인이 필요하다. 당신은 어떤 거인과의 만남이 필요한가? 그들이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가? '거인'을 자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특별한 아이디어가 없다면 주변의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해보라. '기회의 문'은 숨겨져 있지 않다. 누군가는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고, 그리고 당신이 어떻게 그곳까지 갈 수 있는지 자세히 안내해줄 수 있다.

 

'기회의 문'에 다가서고 싶은가? 그렇다면 소셜이노베이터가 거인과 만나 거인이 제공하는 어깨에 올라서게 되는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전략을 따라해보라. 바로 '기회의 문'이라는 거인과 연결되어 있는 또다른 누군가를 찾아나서는 것이다. 거인을 찾는 것보다 '거인을 아는 누군가'를 찾는 것이 생각보다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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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2 - [연재1]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2014/03/03 - [연재2]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2014/03/30 - [연재3]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2014/03/31 - [연재4]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누구나 자신의 경계가 있다)


2014/04/01 - [연재5]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내면의 비이성적인 소리가 들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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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5]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1. 국제활동가로서의 첫 걸음

4) 내면의 비이성적인 소리가 들릴 때 


유엔새천년개발목표(UN Millennium Development Goals)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던 때가 기억난다. 학부를 졸업하고 27살이 되었을 무렵 내가 뛰어들고 싶은 분야가 '국제'라는 것을 늦깍이로 깨닫고 국제대학원 진학을 준비했던 때였다. 그 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국제'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인터넷 검색에 한동안 몰두했다. 그러다 마침 당시 유엔개발계획 한국사무소 대표를 초청해 유엔새천년개발목표에 대한 현황을 듣는 강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등록을 하고 행사장소에 가니 100명이 넘는 젊은 청년들로 행사장은 가득했다. 내겐 무척 생소한 주제에 대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유엔새천년개발목표에 대해 강연자는 빈곤 퇴치, 신생아사망률 감소, HIV/AIDS 예방 등  8가지의 개발목표 하나 하나를 자세히 나열하며 "이러한 목표들이 현재 전 세계 가장 심각한 도전과제이자, 정부와 기업 그리고 비정부기구가 힘을 합해 노력해야할 분야들이다"고 설명했다. 처음 내가 '국제'라는 키워드에 끌렸을 때 느꼈던 '그 국제'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다. 



내가 상상한 '국제'

내가 느낀 '국제'는 뭐랄까 시원한 에어컨에 나오는 태국이나 뉴욕 같은 명소의 호텔에서 각자 깔끔한 넥타이를 맨 신사숙녀들이 모이는 국제컨퍼런스의 '국제'였다. 청중의 주목을 받으며 멋지게 발언 마이크를 켜고, 전문지식을 소개하면서 청중과 친절하게 눈을 마주치고, 적절한 바디랭귀지와 진정성있듯 미간을 살짝 찌뿌리거나 입을 굳게 다문다. 컨퍼런스가 끝나면 칵테일이 준비된 리셉션에 참가를 하고, 세계 각국에서 참가한 사람들과 해당 국가에 유행하는 패션이나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객실로 돌아와 피곤하지만 뿌듯한 하루를 마감하기 위해 욕조에 몸을 담그는 하루 일정까지. 그리고 가끔 아프리카 오지와 같은 개발협력현장에 나가 현장감있게 사진을 찍고, 수혜자 그룹과 만나 경청하는 자세로 고개를 끄덕이며 악수를 하고 기념촬영을 잊지 않는 부분까지가 내가 생각한 '국제'였다. 사실 국제의 의미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나만의 잘못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국제'라는 상상의 나라에 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강연자가 말하는 국제의 개념은 그런 산뜻함과 보람, 그리고 자부심을 자아내는 내용이 아니었다. '과연 이러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급기야는 '과연 나는 이러한 복잡한 문제에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는 재능이나 전문성이 있나?'라는 심각한 결론에 이르렀다. 영어로 진행된 강연이기에 모든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과연 내가 국제라는 분야에 뛰어들어 생존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까지 들었다. 예정보다 길게 진행된 강연에 사회자는 "잠시 열기를 가라앉고 휴식 시간 후 질문시간을 갖겠다"고 안내했다. 앞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강의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곤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내면의 상반된 목소리를 들었다면

그날 강의장을 나서며 내가 가졌던 그 당혹감을 이제 막 소셜이노베이터의 세계에 접어드는 많은 분들도 비슷하게 느끼리라 생각된다. 세계에 산적한 수 많은 문제들 중 하나에 신기하게 관심을 갖게 된다. 해당 문제에 전혀 개의치않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당신은 '나라도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되겠어'라고 느낀다. 하지만 거의 동시에 당신의 내면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해당 분야에 수 많은 전문가와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있는데, 이건 내가 고민할 게 아니잖아. 여기 컨퍼런스에 모인 수 많은 사람들을 둘러봐. 내가 이들보다 더 뛰어날 수 있겠어? 차라리 다른 것을 찾아보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 


이러한 내면의 상반된 목소리에 갈등을 겪게 된다면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소셜이노베이터의 기본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상반된 목소리를 절대 경험하지 못한다. '나라도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되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상반된 목소리의 갈등에서 중요한 것은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인 관정메서 너무 쉽게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을 바꾼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힘>은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을 인용하면서 소셜이노베이터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 적이 있다.


"이성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적응시킨다. 하지만 비이성적인 사람은 고집스럽게 세상을 자신한테 적응시키려 한다. 그래서 모든 진보는 비이성적인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 



자기허락의 경험을 향해 

이성적인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목소리를 잡는 것은 대다수 소셜이노베이터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자신의 '소셜이노베이터 첫 경험'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인 소셜이노베이터 양성기관인 아쇼카(Ashoka) 설립자 빌 드레이튼은 이를 '자기허락'(self-permission)이라고 부른다. 그는 어떤 변화를 만드는 데 있어 결심이 필요한데, 그 결심이 다른 사람이나 사회로부터 '허락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허락해주는 것'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기허락'이 있는 사람은 쉽게 포기하거나, 끊임없이 반복되는 내면의 나머지 반쪽 목소리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쇼카가 전 세계적으로 경쟁률이 높은 펠로우를 선발하면서 활용하는 첫번째 기준이 바로 이런 '자기허락'의 경험이 있는지 여부다. 


당신이 처음으로 뛰어들려는 분야의 문턱이 너무 높아 보이는가? 주변에 관련된 사람들과 비교가 되며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는가? 그러한 내면의 상반된 목소리가 당신을 갈등하게 한다면, 무엇이 이성적이며 비이성적인 지를 먼저 구분해보아라. 그리고 역사를 통해 무한히 많이 반복되었듯이 '비이성적인 목소리'를 선택하라. 이것이 '자기허락'을 만드는 너무나 간단한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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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2 - [연재]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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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4]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1. 국제활동가로서의 첫 걸음

3) 누구나 자신의 경계가 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인상 깊게 본 장면이 있다. 주인공 역할을 맡은 이병헌이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초소를 방문하는 장면이었다. 달빛 외에는 고요한 판문점의 다리 위로 이병헌의 절도있는 군화가 앞으로 나아가는 장면이 클로즈업되었다. 아무런 장애물이 없이 뻥 뚫려있는 있는  다리 중간에서 갑자기 군화는 멈춰선다. 군화는 한걸음 물러선다. '갈까 말까' 고민이 엿보이는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군화는 다시금 걸음을 시작한다. 이병헌의 걸음을 멈춰선 것은 무엇이었을까? 카메라는 다리 위 달빛을 받아 더욱 선명한 한 뼘되는 폭의 하얀색 선을 살짝 보여준다. 다리 위에 그어져있는 하얀 선 하나, 그것은 물리적인 장벽과 장애물보다 더욱 파괴적인 심리적이며 관념적인 장벽과 장애물이었다. 


소셜이노베이터로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진짜 어려움은 물리적인 장벽과 장애물보다 이러한 심리적이며 관념적인 장벽과 장애물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하얀 선은 누군가가 만들기도 하지만, 스스로 하얀선을 그어놓으며 자신의 경계를 한정짓는 경우도 있다. 역사라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사적으로 보는 것에 익숙했던 나는 현재를 보다 넓게 바라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학사 졸업 후에 어차피 특별한 진로가 정해지지 않았기에 한국을 넘어서 다른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나는 내가 익숙하게 순응했던 내 삶 주변에 무수히 그어진 '하얀 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남이 보는 나의 정체성을 넘어서다

익숙했던 하얀 선은 내가 익숙했던 공간, 문화, 주변의 사람들을 벗어날 때 보다 뚜렷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졸업 후 1년간 체류했던 중국은 내게 '한국에서의 김정태'와 '세계에서의 김정태'의 모습이 다를 수 있음을 알려줬던 공간이었다. 한국에서의 내 모습은 '내향적' '순응적' '유머감각이 없음'과 같은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주변 지인들이 불충분한 정보와 한정된 판단으로 인식하는 나의 모습이 마치 거울에 비쳐진 진짜 내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썰렁하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중국인에게 나는 무척 유머가 많은 사람이었다. 몇 마디와 함께 바디랭귀지를 곁들이면 중국 친구들은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내 유머감각이 국내형이 아닌 국제형일 수도 있다는 재미난 상상과 함께 나에 대한 스스로의 '하얀 선' 하나를 넘어갔다. 



내가 모르는 세계의 실체를 인정하다

내게 의미가 있었던 또다른 공간은 극동러시아의 연해주란 곳이었다. '바다에 접한 땅'이란 연해주는 이름으로 느껴지는 낯섬보다도 더욱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지역이다. 한국 최초이자 최고(最古)인 재외동포 '고려인'이 형성된 곳이기 때문이다. 1869년 한반도 대기근으로 많은 조선인들이 연해주로 이주했고, 일제강점기에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6만여명의 한인들이 독립운동 공동체를 건설했던 곳이기도 하다. 역사의 매정함이랄까. 1937년 스탈린은 갑작스럽게 이곳에 생활하던 한인들을 '일본군의 스파이'가 될 수 있다는 의심에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다. 강제이주 당하는 기차 안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사망했고, 기차가 도착했던  중앙아시아의혹독한 추위에 특히 아이들과 유아들이 많이 사망했다. 


역사를 전공했음에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던 '역사'를 듣고 경험하는 순간, 내가 아는 것과 인식하는 세계가 무척이나 제한된 세계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내가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더 많다는 것을 인정하며, 나는 안정된 세계를 넘어 모호하고 복잡한 세계로 진입하는 '하얀 선'을 넘어갔다. 



불명확하고 체계적이지 않은 사람에게 다가서다 

마지막 공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었다. 한 지방자치단체의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평화'라는 컨셉으로 두 지역을 방문해 해당 지역의 청년들과 교류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수퍼마켓마다 무장경비원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예루살렘을 떠나 팔레스타인을 방문했을 때 그곳은 내가 '인식하고 있던' 팔레스타인이 아니었다. 분노와 증오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곳에서도 아이들의 순수한 눈빛과 어른들의 보다 나은 삶에 대한 갈망이 존재했다.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그 전에 이 지역을 바라보는 내 관점은 주류 미디어가 제공하는 한정된 시각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폭탄테러나 분노로 가득찬 현장을 상상했지만 그곳에도 엄연히 '삶'이 존재했던 것이다. 


현장에서의 충격은 곧 부끄러움으로 변했다. 과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이슈에 대한 토론회에 참여하면서 현장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채 신문기사와 몇가지 논문을 읽고서 해결책을 나름대로 제시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본적이 있는가? 이들의 진짜 삶과 갈망과 두려움에 대해 직접 들어본 적이 있는가? 정보나 지식으로 접하는 문제는 명확하고 체계적일 수 있지만, 해당 문제를 겪는 사람을 만나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은 명확하지 않고 체계적이지 않은 프로세스다. 사람은 명확할 수 없어도 감정이 있고, 체계적이지 않아도 관계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에 대한 진정한 접근을 위해서 나는 정보가 아닌 사람을 만나는 '하얀 선'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소셜이노베이터는 자신의 삶에 알게모르게 그어져 있던 '하얀 선'을 하나씩 발견하고, 그 선을 넘어가는 노력을 취한다. 경계를 하나둘 벗어난다는 것은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뜻도 되지만, 그만큼 경계가 확장되었다는 것도 의미한다. 내게 있었더 몇가지의 '하얀 선'을 인식하고 넘어가면서 내게도 내 세계의 경계가 확장됨을 느끼게 하는 변화가 있었다.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서울의 오후 한 때를 보내면서 문득 "지금 팔레스타인은 몇 시이고, 연해주는 몇 시일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전 세계 곳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은 내게 크나큰 삶의 확장이었다. 그렇게 나는 역사학도에서 국제활동가로의 삶을 시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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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3)




1. 국제활동가로서의 첫걸음 

2) 소셜이노베이터에게 어떤 전공이 필요한가?


지금도 종종 질문을 받는다. 중고등학생에게서라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되기 위해 필요한 전공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을 받고, 일반 기업에 다니다가 이쪽 분야에 관심을 갖는 분들에게는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서 무엇을 전공해야 할까요?'라고 좀더 구체적인 질문을 받는다. 소셜이노베이터가 되기 위해 필요한 학부나 대학원에서의 전공이 존재할까? 있다면 그 전공은 무엇일까? 


사실 대학에서의 전공이 개개인의 전문 분야로 연결된 시기는 한국 역사에서 길게 잡아봐야 50년이 넘지 않을 것이다. 한국전쟁의 결과로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어야 할 때 '출신 전공'은 곧 해당 분야 전문가를 의미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로 여겨졌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는 경영학을 전공한다고 꼭 경영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처럼 학부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고 역사 이외의 일을 할 때 결격 사유가 되는 시대도 아니다. 전공분야가 전문분야로 꼭 연결되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전공은 사회문제를 깨닫게 하는 길잡이

결론적으로 소셜이노베이터에게 딱 어울리는 전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공학이든 법학이든 경제학이든 또는 생물학이든 모든 전공은 소셜이노베이터로 성장하는 데 젼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 앞서 소셜이노베이터가 '어떤 사회문제든 자신이 공감하는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해가는 과정 그 자체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을 떠올려보자. 이때 자신의 전공은 자신이 공감하는 특정 사회문제를 발견하는 데 있어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된다. 역사학의 길잡이든, 생명공학의 길잡이든 소셜이노베이터는 이러한 길잡이의 도움을 받아 보다 보편적인 사회문제로 들어갈 용기를 얻게 된다. 일단 문제를 발견하고 용기를 얻게 되면 소셜이노베이터는 더이상 자신의 전공이나 전문분야에 억매이지 않는다. 소셜이노베이터가 펼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배우게 되는 경험과 성찰이 스스로에게 새로운 전공이 되기 때문이다. 여행자에게 여행이 익숙해질 때 가이드가 더이상 필요없듯이, 소셜이노베이터에게 전공의 기능 역시 비슷하다.  .  


그래도 분명 도움이 되는 전공이 있지 않느냐고 계속 묻는 분들이 있다. 아직 특정 전공을 선택하지 않은 경우라면 '인간중심의 관점과 성찰'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전공을 택해보라고 권한다. 이런 전공의 특징은 '사람'과 직접적으로 연계되는 전공으로, 일반적인 아카데미나 교육 프로그램으로는 충분히 장기적으로 배울 수 없는 사람을 느끼고 관계하고 고민하게 하는 전공들이다. 


예를 들어 문학, 철학, 사학 등 '문사철'로 통칭되는 좁은 의미의 인문학 뿐아니라 사회학, 심리학, 언어학 등을 포함하는 인문사회과학, 그리고 사용자와 고객의 관점에서 사고하는 훈련을 받은 예술-디자인 전공 등은 '인간중심의 관점과 성찰'과 관련되어 있다. 인간을 다루는 의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영국에서는 사회적기업에 뛰어드는 많은 젊은이들의 전공이 의학분야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사람을 위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깨닫게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공학이나 자연과학은 소셜이노베이터가 피해야할 전공인가? 그렇지 않다. 이러한 전공을 하면서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나 생체모방학(biomimicry) 등에 관심을 가지고 인간중심 그리고 생태계 중심의 접근을 취하는 멋진 분들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인간이란 가치를 잊지 않는다면 그 어떤 전공도 소셜이노베이터에게 멋진 전공이 될 수 있다. 






광장과 길거리에 나가게 하는 전공을 택하라 

인문학을 전공한 내 경험을 나누어본다면, 인문학과 같은 '인간중심의 관점과 성찰'에 도움을 주는 전공은 우리에게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그것은 바로 '광장'이다. 역사상 가장 지혜로왔다고 하는 솔로몬왕은 '잠언'이라는 전략서를 남겼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고,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잠언 1장 20절-21절)라고 기록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길거리(in the street)와 광장(in the public square)이라는 부분이다. 솔로몬은 흥미롭게도 지혜가 바로 길거리와 광장에 가득하다고 말한다. 길거리와 광장은 어떤 공간인가? 바로 사람이 모이고 떠들고 관계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다. 


솔로몬의 성찰과 같이 '지혜'는 조용한 연구실이나 독서실에 발견되기 보다는, 떠들석한 광장과 길거리에서 발견될 확률이 높다. 다양한 지식과 사상이 연결되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흐름이 섞이면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람이 경계되지 않는 곳에서 '지혜'가 나온다는 말이다. 사실 지혜의 어원이 되는 뜻은 '듣는 마음'이다. 광장과 길거리에서 이런저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부터 지혜가 시작된다. 소셜이노베이터는 자신의 해결책을 먼저 만들어 이를 실행할 곳이 어디인지 기웃거리지 않는다. 오히려 광장과 길거리에서 누군가는 외면하고 무시하는 작은 이야기를 찾아나선다. 광장과 길거리에서 이렇게 사람에 관심을 가지고, 작은 이야기를 듣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전공도 소셜이노베이터에게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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