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4]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1. 국제활동가로서의 첫 걸음

3) 누구나 자신의 경계가 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인상 깊게 본 장면이 있다. 주인공 역할을 맡은 이병헌이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초소를 방문하는 장면이었다. 달빛 외에는 고요한 판문점의 다리 위로 이병헌의 절도있는 군화가 앞으로 나아가는 장면이 클로즈업되었다. 아무런 장애물이 없이 뻥 뚫려있는 있는  다리 중간에서 갑자기 군화는 멈춰선다. 군화는 한걸음 물러선다. '갈까 말까' 고민이 엿보이는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군화는 다시금 걸음을 시작한다. 이병헌의 걸음을 멈춰선 것은 무엇이었을까? 카메라는 다리 위 달빛을 받아 더욱 선명한 한 뼘되는 폭의 하얀색 선을 살짝 보여준다. 다리 위에 그어져있는 하얀 선 하나, 그것은 물리적인 장벽과 장애물보다 더욱 파괴적인 심리적이며 관념적인 장벽과 장애물이었다. 


소셜이노베이터로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진짜 어려움은 물리적인 장벽과 장애물보다 이러한 심리적이며 관념적인 장벽과 장애물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하얀 선은 누군가가 만들기도 하지만, 스스로 하얀선을 그어놓으며 자신의 경계를 한정짓는 경우도 있다. 역사라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사적으로 보는 것에 익숙했던 나는 현재를 보다 넓게 바라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학사 졸업 후에 어차피 특별한 진로가 정해지지 않았기에 한국을 넘어서 다른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나는 내가 익숙하게 순응했던 내 삶 주변에 무수히 그어진 '하얀 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남이 보는 나의 정체성을 넘어서다

익숙했던 하얀 선은 내가 익숙했던 공간, 문화, 주변의 사람들을 벗어날 때 보다 뚜렷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졸업 후 1년간 체류했던 중국은 내게 '한국에서의 김정태'와 '세계에서의 김정태'의 모습이 다를 수 있음을 알려줬던 공간이었다. 한국에서의 내 모습은 '내향적' '순응적' '유머감각이 없음'과 같은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주변 지인들이 불충분한 정보와 한정된 판단으로 인식하는 나의 모습이 마치 거울에 비쳐진 진짜 내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썰렁하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중국인에게 나는 무척 유머가 많은 사람이었다. 몇 마디와 함께 바디랭귀지를 곁들이면 중국 친구들은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내 유머감각이 국내형이 아닌 국제형일 수도 있다는 재미난 상상과 함께 나에 대한 스스로의 '하얀 선' 하나를 넘어갔다. 



내가 모르는 세계의 실체를 인정하다

내게 의미가 있었던 또다른 공간은 극동러시아의 연해주란 곳이었다. '바다에 접한 땅'이란 연해주는 이름으로 느껴지는 낯섬보다도 더욱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지역이다. 한국 최초이자 최고(最古)인 재외동포 '고려인'이 형성된 곳이기 때문이다. 1869년 한반도 대기근으로 많은 조선인들이 연해주로 이주했고, 일제강점기에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6만여명의 한인들이 독립운동 공동체를 건설했던 곳이기도 하다. 역사의 매정함이랄까. 1937년 스탈린은 갑작스럽게 이곳에 생활하던 한인들을 '일본군의 스파이'가 될 수 있다는 의심에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다. 강제이주 당하는 기차 안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사망했고, 기차가 도착했던  중앙아시아의혹독한 추위에 특히 아이들과 유아들이 많이 사망했다. 


역사를 전공했음에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던 '역사'를 듣고 경험하는 순간, 내가 아는 것과 인식하는 세계가 무척이나 제한된 세계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내가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더 많다는 것을 인정하며, 나는 안정된 세계를 넘어 모호하고 복잡한 세계로 진입하는 '하얀 선'을 넘어갔다. 



불명확하고 체계적이지 않은 사람에게 다가서다 

마지막 공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었다. 한 지방자치단체의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평화'라는 컨셉으로 두 지역을 방문해 해당 지역의 청년들과 교류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수퍼마켓마다 무장경비원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예루살렘을 떠나 팔레스타인을 방문했을 때 그곳은 내가 '인식하고 있던' 팔레스타인이 아니었다. 분노와 증오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곳에서도 아이들의 순수한 눈빛과 어른들의 보다 나은 삶에 대한 갈망이 존재했다.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그 전에 이 지역을 바라보는 내 관점은 주류 미디어가 제공하는 한정된 시각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폭탄테러나 분노로 가득찬 현장을 상상했지만 그곳에도 엄연히 '삶'이 존재했던 것이다. 


현장에서의 충격은 곧 부끄러움으로 변했다. 과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이슈에 대한 토론회에 참여하면서 현장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채 신문기사와 몇가지 논문을 읽고서 해결책을 나름대로 제시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본적이 있는가? 이들의 진짜 삶과 갈망과 두려움에 대해 직접 들어본 적이 있는가? 정보나 지식으로 접하는 문제는 명확하고 체계적일 수 있지만, 해당 문제를 겪는 사람을 만나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은 명확하지 않고 체계적이지 않은 프로세스다. 사람은 명확할 수 없어도 감정이 있고, 체계적이지 않아도 관계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에 대한 진정한 접근을 위해서 나는 정보가 아닌 사람을 만나는 '하얀 선'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소셜이노베이터는 자신의 삶에 알게모르게 그어져 있던 '하얀 선'을 하나씩 발견하고, 그 선을 넘어가는 노력을 취한다. 경계를 하나둘 벗어난다는 것은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뜻도 되지만, 그만큼 경계가 확장되었다는 것도 의미한다. 내게 있었더 몇가지의 '하얀 선'을 인식하고 넘어가면서 내게도 내 세계의 경계가 확장됨을 느끼게 하는 변화가 있었다.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서울의 오후 한 때를 보내면서 문득 "지금 팔레스타인은 몇 시이고, 연해주는 몇 시일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전 세계 곳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은 내게 크나큰 삶의 확장이었다. 그렇게 나는 역사학도에서 국제활동가로의 삶을 시작하게 됐다. 




이전 연재글 바로가기


2014/03/30 - [연재3]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2014/03/03 - [연재2]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2014/03/02 - [연재]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소셜앙터프러너 단호비전 Trackback 0 : Comment 0

댓글을 달아 주세요